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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Nov 28. 2023

정성이 깃든 삶: 2023 아트스토리 자리


마음이 참 헛헛한 날들이었다. 해야 할 일은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쌓여갔다. 일을 좀 쳐내볼까 싶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하다 보니 나의 체력은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어 며칠 하다가 멈췄다. 작년에 비해 그래도 연속 2일까지는 버티어 내는 내 체력에 스스로 대견하다고 하다가, 이렇게 나약할 수가 있나라고 채찍질을 하다가를 반복했다.


덩어리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어차피 안 되는 거라면 생각조차 하지 말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되뇌면서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1여 년 만에 이태원에 있는 아트스토리 자리를  다시 방문했다. 커피숍에서 근황 이야기 하는 거 대신 근처 갤러리 방문은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 흔쾌히 좋다고 말씀해 주신 선생님과 함께 갔다.




출입구 문을 열려고 다가가니, 대표님이 책상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하고 계신다.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들어가자마자 안부를 여쭙고, 진행 중인 작품을 감상하고 달력을 구매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푸른 바람의 2024>라는 전시와 함께 내년 달력과 연력 판매도 동시 진행했다. 12명 작가의 작품이 2024년 달력의 1월부터 12월 중 한 달씩을 장식했다.


@art_story_zari  인스타그램 전시 포스터 발췌

https://naver.me/G9sq5d2T​​


갤러리 안에는 2023년 아트스토리자리와 함께 했던 작가 12명이 청룡의 해, 2024년의 기대를 담아 푸른색을 담은 작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대표님은 따뜻한 차를 내어주시고는 작품과 작가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들려주셨다. 중간중간 묻는 질문에 답도 해주시고, 같이 생각도 해주셨다.




마음의 힘듦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 고양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은 작가, 꽃을 흙으로 빚어낸 작가, 남겨진 집의 재료를 이용해 의자이자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 컵으로 관계를 표현한 작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소녀상을 만든 작가, 바닥에 흩뿌려진 페인트를 사진으로 담아낸 작가, 판화로 일상을 잡아낸 작가 등등 12가지의 응축된 삶이 서로 연결된 서사를 가지고 이어졌다.


함께 갔던 선생님은 섬세하고 예리한 질문들을 툭툭 던졌다. 질감, 재료, 도구 등등.


김윤경 작가의 “선입견은 나빠”


대표님이 아는 작가로 구성했냐는 질문에서 대표의 수고로움이, 정성스러움이 얼마나 담겼을까 짐작해보기도 했다. 대표가 직접 알았던 사람은 단 1명뿐이라고 했다. 찾고, 찾고, 또 찾고.


대형 갤러리가 아님에도 알찬 구성과 꽉 찬 느낌,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정성스레 찾은 12명의 서로 다른 삶과 생각이 어우러져 사람들을 맞이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럽게 산다는 것. 빠르게 흩날리는 세상에서 “온갖 힘을 다해 참되고 성실되기 살려는 마음”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 솔깃한 책략을 택하는 것이 더욱 세련되거나 빠르다고 여기는 문화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푸른 바람의 2024>에서는 더디더라도 꾹 꾹 눌러간 12인의 정성스러움이 가득 차 있다. 힘겨움도 기꺼이 마주하며 존재를 인정해 주고. 몇 년 동안 멈췄다가 다시 작품을 완성한 이야기에  멈춤이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응축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품이야기를 들으며 전시를 둘러보며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위로도 받았다. 다시금 의욕이 솟구쳤다.  나도 정성스럽게 살아보고 싶었다. 헛헛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단 몇십 분의 시간으로 아트스토리자리를 들어가기 전과 나올 때 나의 마음이, 표정이, 에너지가 달라졌다. 활력을 찾았다.


나에게 활력의 지속력은 그리 길지 않다. 지속을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힘들면 힘듦도 정성스레 느끼고, 회복을 반복할 수 있도록 2024 달력을 구매했다. 2024년 든든한 지원군을 집에 들였다. 같이 간 선생님께도 한 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드렸다.


Y에게는 12가지 고양이 얼굴이 들어가 있는 연력을 선물했다. 매일의 일상이 녹록지 않겠지만, 일터에서 고양이 얼굴을 보며, 위트를 잃지 말고 숨통 좀 틔이며 보내라고.


2024년, 정성스러운 삶을 꿈꿔본다.






뒷 이야기.


함께 갔던 선생님은 아트스토리자리를 나오며 내게 말했다.

“저 작품을 구매할지도 몰라요.”


얼마 뒤, 연락이 왔다.

“연말 제게 주는 선물로 그림 구매했어요.“


내가 다 기뻤다. 마침 내가 해당 작가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고 있던지라 작가의 기쁨과 서사를 접할 수 있었다.


2년 만의 완성작, 멀리서 관망하던 주체의 첫 번째 등장인 작품. 그리고 배우자의 생일(인지 생일주간이었는지)에 그림이 판매되는 이 놀라운 서사.


작가, 갤러리, 콜렉터 간의 연결과 서사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이런 연결이 참 좋구나. 그리고 돈은 이렇게 쓰는 게 잘 쓰는 거구나 싶었다. 돈이 흘러나가고 들어가는 모든 주체들이 즐거운 씀. 누군가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씀.






2024년
정성스러운 삶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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