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TORYZARI
몇 년 만의 이태원인가. 나의 첫 도예 선생님이신 심희정 선생님이 갤러리를 여셨다. 2022년 가을 초입, 호제랑 방문하기로 했다.
“호제야, 우리 토요일에 이태원 가자! 엄마랑 데이트 하자.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새로 생긴 중식당도 가고. 디저트 맛집도 가고. 색다른 느낌의 마을로 가보자. 거기 박물관도 있어. Y! 나 호제랑 갤러리 갈 거다!”
그 누구도 큰 호응을 하지 않았지만, 신나서 얘기했다.
“올초에 선생님이 자리에 관한 그림으로 전시를 하셔서 다녀왔잖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아트스토리 자리>라는 이름으로 갤러리를 오픈하셨어.
이 추진력 뭘까. 와 너무 멋져.
이번 갤러리 전시 주제는 <관계>야. <관계 잇는 자리> Y! 이거 너무 멋지지 않아?! 딱 내가 좋아하는, 내 화두인 주제야. 갔다 올게!”
2022년 2월 전시에서는 일에서의 자리에 불안을 느꼈던 시기를 거친 후라 “내 자리는 내가 가꾼다!”를 다짐하며 돌아왔더랬다.
2022년 10월. 관계를 만나러 갔다.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서울역에 생긴 도원스타일로 7세 호제와 내가 함께 들어갔다. 호제가 외식으로 탕수육만 먹던 시기였던지라, 뼈 덩어리가 함께 나오는 탕수육과 가지덮밥을 시켰다. 눈부신 깃털 조명 아래에서 서로 옆에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식사했다. 그 많은 탕수육이 호제 뱃속으로 다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호제 손을 잡고 서울역사 안을 걸으며 얘기했다.
“호제야, 우리 갤러리 갈 때 뭐 좀 사가자.”
“왜 사가야 해?”
”아, 갤러리 오픈 축하, 전시 축하드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거지. 말로만 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전달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더 잘 전달될 때가 있잖아.
그리고 여기는 심지어 무료 관람이야. 좋은 걸 잘 봤다고 표현을 해야 하지 않겠니?!
엄마 어릴 때, 초등학교 선생님이 전시할 때도 친구들이랑 용돈 모아 꽃다발 사서 가고 했었어. 엄마 공연하면 사람들이 꽃이랑 먹을 걸 선물해주기도 하고 그랬어. 그게 정말 고마운 건데 고맙다고 못한 것 같아.
선물 받는 재미도 있지만, 선물 주는 재미도 있어. 호제도 느껴보면 좋겠어.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가 전시나 공연, 좋은 일로 호제를 초대하면 작은 거라도 꼭 사서 축하주면 좋겠어.“
사람들의 목소리, 안내방송, 여행가방 굴러가는 소리 등 각종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호제가 다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뭘 사면 좋을까? 꽃 사갈래? 아 요즘 꽃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풍성한 꽃다발은 준비 못할 것 같아.
그럼 여기 새로 생긴 빵집도 있고, 간식거리도 있는데 먹을 걸로 사갈까? 배 두둑이 드시라고?”
“아니. 꽃 사자.”
“그래도 먹을거리가 좀 더 있어 보이지 않을까? 같은 값이면?!”
“아니. 꽃 사자.”
“어, 그래. 가자.”
“어떤 게 좋을까? 예쁜 꽃들 많다. 수국도 예쁘고 해바라기도 예쁘다. 호제는 뭐가 마음에 들어?”
“난 해바라기. 해바라기 사자.”
“한 송이는 좀 그렇지 않을까? 수국이 풍성해 보이는데? 국화는 어때? 장미도 예쁜데? “
“한 송이 괜찮을 것 같아. 해바라기 사자.”
”어, 그래. 해바라기 사자.“
그렇게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이태원행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탈 때면 호제는 꼭 창밖 풍경을 유심히 본다. 남산타워도 보이고, 다양한 브랜드의 차를 보고 반가워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골라보기도 하고.
드디어 도착했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바로 짠! 하고 나타났다. 선생님은 가족행사 참석으로 부재중이셨다. 선생님 지인이 갤러리를 지키고 계셨다.
선생님 지인 분은 나와 호제를 보고 엄청 환대해 주셨다. 간식거리와 마실거리를 내어주셨다. 편히 둘러보라고, 선생님이 계셨다면 설명도 해주고 더 좋았을 텐데라며 미안함과 아쉬움을 진하게 내비치셨다.
도자기 컵이 화폭에 툭 튀어 있기도 하고,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알록달록하게 자리랄 잡고 있기도 했다. 호제에게 작품 제목을 읽어줬다. 같이 작품을 보다가, 따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자 제일 마음에 들었던 그림을 한 번씩 더 보자고 얘기했다.
호제는 이 그림 앞에 섰다. 호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그림 앞에 같이 섰다. 선생님 지인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덕분에 같이 나온 사진이 생겼다.
선생님 지인은 창고를 열더니, 인쇄한 38번 작품을 선물로 주셨다. 서로 다른 컵들이 차곡히 쌓여 있는 그림이다. 나갈 때 호제 마실 음료와 간식들도 챙겨주셨다. 해바라기 한 송이 들고 갔다가, 양손 가득 두둑이 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젤라토 가게로 들어갔다. 쌀맛과 바닐라맛을 하나씩 골라 자리를 잡았다. 젤라토를 먹으며, 관계,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얘기했다. 어쩌다, 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센 포즈, 엽기적인 표정 짓기 놀이를 하고 나왔다.
주변을 구경하며 패션5로 향했다. 호제에게 밀가루의 서로 다른 층위의 향, 디저트의 달콤한 향이 콧속으로 들어오고, 몸을 감도는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20대 중반, 패션5 문을 통과할 때, 나도 모르게 코로 냄새를 들이마시며, 흡~! 하~! 와!!!! 를 외쳤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는지, 2022년의 패션5 출입에서는 달달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호제는 빵도, 푸딩도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다며 나가자고 손을 끌어당겼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국 자기 전시를 보러 들어가기도 하고, 전통물품 판매점에 들어가기도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에 도착했다.
12월 중반, 선생님이 우편물을 보내줄 게 있다며 집 주소를 물으셨다. 초대장이나 엽서를 보내주시려나 싶었다. 사실 어떤 것이냐 보다, 이메일이 아닌 우편물을 받는다는 생각에 그저 설레고 감사했다.
하얗게 눈이 소복이 내려 있던 12월 마지막 주에 탁상달력이 딱! 도착했다. 게다가 고이 접은 봉투를 여는데 긴 메시지가 까꿍하고 나왔다. 소리를 질렀다!
“와아!!!! 이것 봐!!!!! 호제야, 나랑 같이 갔던 곳 갤러리 기억나지? 거기 대표님이 보내주셨어!! Y!! 메시지 너무 감동이야!! 으헝헝헝허허헝“
선생님 작품이 달력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중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12월 그림! 축제!
2023년 새해가 시작하기도 전에 2023년 12월이 기다려졌다. 12번째 달력장을 어서 펼치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기쁘다니!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부지런함과 따스함, 힘찬 추진력이 담긴 소중한 달력이었다.
가끔 아이와 전시 갔던 일을 얘기한다.
“이태원 간 거 기억나?“
“아니.”
“호제가 해바라기 꽃 사서 갔던 갤러리 있잖아. 관계라는 주제로 전시했던 거. 선생님이 호제가 준 꽃 이렇게 예쁘게 찍어보내주셨잖아.
“아~ 기억나!“
“엄마랑 호제는 무슨 관계일까?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엄마, 관계가 뭐야?”
“relationship. 연결된 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거. 사람뿐 아니라 개체와 개체가 연결된 거. 호제랑 지구, 호제랑 자연도 돼.“
관계 잇는 전시 덕분에 8살이 된 호제, 앞으로 나이 먹어갈 호제와 관계와 상호작용에 관한 얘기를 지속할 수 있게 됐다. 2022년 아트 스토리 자리가 주는 여운이 꽤나 깊고 진하다.
(2023년 아트스토리 자리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아트스토리 자리
인스타그램 계정(@art_story_zari)
https://instagram.com/art_story_zari?igshid=OGQ5ZDc2ODk2ZA==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27가길 54-14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