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으로 대학에서 강의한 지 햇수로 10년이 됐다. 중간에 쉬어가는 학기도 있었지만, 계절학기를 여럿 하기도 했으니 너그럽게 햇수를 셌다. 내가 20대 중반이던 때, TV에 나온 가수 양희은이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매일 아침 목을 푼다. 20년이 지나니 목을 풀고, 노래를 부를 때, 목에 힘을 주지 않게 되더라. “ 한창 몸에 힘을 주고 살던 때라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오겠지, 왔으면 좋겠다라며 부러워하며, 20년은 뭐든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강의한 지 딱 그 20년의 반이 됐다. 그래서 올해를 10년을 돌이켜보고 자축하는 해로 삼기로 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2014년, 첫 강의를 맡았다. <커뮤니케이션과 사회>라는 과목이었다. 모든 것에 힘이 들어갔다. 수업자료에 담긴 내용은 흘러넘치도록 많았다. 시험과 과제도 많았다. 외형적으로도 힘이 빡 들어갔다. 어깨에 뽕이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 정장을 갖추고, 8cm 힐을 신었다. 안경 벗고 렌즈 끼고 풀 메이크업을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색조화장을 하고 다니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정장이 많지 않아 이건 어느 순간 가다가 그만뒀던 듯?!)
그다음으로 맡은 <커뮤니케이션조사론>에서는 미적분을 시험으로 내진 않았으나, 수업자료에는 살짝 넣었다. 중간중간 수학문제을 넣은 쪽지 시험도, 중간고사도 치르고. 조별로 직접 연구주제, 연구문제 설정부터, 설문지 구성, 설문조사, 통계프로그램 돌리고 학부생을 대상으로 소논문을 작성하게 했다. 그것도 계절학기 때. 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진다.
내가 아는 것보다, 내가 이해한 것보다 많이 담다 보니 강의하고 온 날은 언제나 이불킥 타임이 있었다. 얘기하다 내가 찝찝해지는 건 이 부분은 우리 다음 시간에 더 살펴보자고 하거나 스르륵 모르게 넘어갔다가 (다 알았을 거다) 다음 시간 복습을 하며 오류를 잡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희로애락을 지나며 강의를 대하는 나의 자세, 생각, 태도, 마음 등이 조금씩 다듬어져 왔다. 굵직한 것만 정리를 해보면, 먼저 호칭이다.
(호칭) 첫날, 수강생에게 나는 ‘선생님’이라 불러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선생은 먼저 선, 날 생 한자어로 된 단어다. 내가 수강생보다 학위 밟는 과정을 빠르게 했을 뿐이다. 내가 익힌 내용과 각자가 가진 생각과 지식을 뿜어내며 나와 수강생, 수강생과 수강생 간에 창발이 일어나기를 희망하는 바람을 담았다. 하모니가 가능하다면, 최고의 팀워크로 한 학기를 꾸려내고 싶다는 선생의 마음을 듬뿍 담았다.
(학생과의 관계) 초창기에는 학생을 향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거나 일부러 거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마음에 힘이 많이 들어갔었다. 학생을 향한 마음은 교안에 쏟아붓고 피드백에 쏟아부었다. 애정이었으나 학생들은 고단했을 거다. 그 시절 내가 처한 구조적 위치, 학계나 학교를 생각하는 나의 태도와 분위기 등등에서 그랬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마음을 열고 마음속 얘기를 나눠주고, 다른 학교 친구와 함께 방문해서 고민도 나눠주고, 쑥쑥 성장하는 기쁨의 순간을 잊지 않고 내게 나눠주는 귀한 인연을 여럿 만났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얘기할 걸 싶은 학생들도 떠오른다. 햇살을 받으며 많이 웃으며 살고 있길 이따금 떠올리며 기도한다. 자연과 온갖 신에게.
여러 만남을 거치며 수강생을 향한 마음이 몰랑몰랑해졌다. 그래서인지 주제넘은 커뮤니케이션이라 생각될지언정, 선생이라는 역할을 맡았을 때는 망설이기보다는 오지랖을 택하고 있다.
(강의료) 학생이 내는 등록금에는 내가 받는 강의료가 포함되어 있다. 매 학기 학생들 입장에서의 본전을 떠올려 본다. 수강생 설문조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이유 중 학위가 필요해서 입학하고 졸업을 위해 학점을 채워야겠지만 뭐라도 하나 얻어 갔으면 한다. 유튜브도 있고, ChatGPT도 있는데 대학이나 대학원 수업을 듣는 이유, 들어야 하는 이유를 짐작해 본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건 큐레이션(curation)과 피드백(feedback)이 아닐까 싶다. 무수히 많은 정보 중에 일부를 선별에 스토리를 만들어 한 학기 동안 나누는 일.
그리고 학생이 지닌 장점을 발견하고 개선방향을 제안하는 일. ChatGPT가 갖고 있지 않은 학생 정보(예, 비언어 등)를 나는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15~16주 동안 각자가 가진 생각의 벽에 바늘구멍을 내는 일. 지지지직 크랙(crack), 금 가는 것도 대환영이다. 수업을 들은 후, 일상이 색달라보이고 신기한 것 투성, 재미있는 것 투성으로 바뀌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앞으로 10년. 언제까지 지금처럼 대학에서 강의를 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같은 형식이 아닐지라도 강의라는 ‘업’은 지속하고 싶다. 이번에 확고히 알았다. 나는 강의라는 업을 좋아한다. 지속가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내공을 쌓아 나가보려 한다. 조금 더딜지라도 차근차근히!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생각하면 할수록 많은 분들 덕분에 제가 10년이라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강의를 이어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던 선생님들, 겸직을 할 수 있게 승인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사장님과 팀국장님들. 용기 내어 수강신청을 해주신 분들. 체력이 위기일 때 도움을 주셨던 분들. 특강 연사로 와주셨던 분들. 가족들! 모두모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을 확대 수정해서 적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