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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Jul 28. 2016

리스본행 야간비행

포르투갈 20일의 기록 1

Nuestras vidas son los rios que van a dar en la mar, qu'es el morir.

Our lives are rivers, gliding free to that unfathomed, boundless sea, the slient grave!

우리의 삶은 강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없는 바다, 그 조용한 무덤으로 미끄러져가는.

- 호르헤 만리케 (Jorge Manrique)


호르헤 만리케의 인용구로 시작하는 파스칼 메르시에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번 포르투갈 여행을 위해 이보다 더 탁월한 책을 고를 수 있었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 한 때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되었던, 서쪽 끝의 땅이 자리한 나라.



여행 중에 지금까지의 여행에 대한 감상이라도 나눌라치면 언제나 우리의 시도는 숨길 것도 없이 '최악이다' 혹은 '지겹다'로 끝이 났다. 포르투갈의 여름은 전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이 더웠고(사람 체온 수준으로 더위가 치솟는 것은 예사), 캠핑장마다 개미 떼의 습격을 받기가 일쑤였으며, 알가베(Algarve) 지방에서는 막차 시간이 오후 두 시임을 까맣게 모른 채 깡촌에서 발이 묶였고, 와일드 캠핑의 마지막 삼 일간은 말 그대로 자연인(?)의 상태로 찝찝함을 온몸에 삭혀두어야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풍족하고 따뜻한 음식, 푹신한 침구, 따뜻한 샤워가 반가워 마지않았지만, 사흘 만에 샤워를 하면서 머리에서 Praia da Marinha의 해초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정말 순간적으로 지난 20일의 여행에 대한 시각이 조소 섞인 불만에서 따뜻함으로 변모했다. 도착한 지 채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언제나와 같이 과거에 대한 미화가 시작된 것일까?


'불행해지는 지름길: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들을 온 힘을 다해 싫어하고, 싫어하는 동안 좋아할 수도 있을 법한 것들을 좋아하게 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여행 중 노트에 적힌 글귀.


아마 툴툴대기만 바빴던 내가 손가락 사이로 놓쳐버린 또 다른 소중한 순간들이었던 모양이다. 뜨거웠기에 알가베(Algarve) 지방의 해변에 시원하게 뛰어들 수 있었고, 텐트의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었기에 노래하는 새소리로 아침을 맞았으며, 막차를 놓친 덕에 인생의 첫 히치하이킹 경험을 했고, 야생에서의 캠핑이었기에 까만 적막이 내려앉은 해변에서 쏟아지는 별들 아래에 누울 수 있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Given that we can live only a small part of what there is in us - what happens with the rest?

- Pascal Mercier, Night Train to Lisbon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오직 작은 부분만을 살고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몽테뉴, 페르난두 페소아의 서두에 인용한 것부터 시작해 파스칼 메르시에는 그의 소설에서 패치워크와 같은 우리 개별 존재가 지닌 다양성에 대한 믿음을 이어나간다.


매일을 같은 일상과 그 규칙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다 모든 것을 버리고 리스본으로 떠날 수 있었던 충동적인 면에 스스로 놀랐던 그레고리우스처럼, 순간에야 입만 삐죽 내밀고 불평하기 바빴던 응석받이에 가까운 나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에 몇십 킬로 씩 걷고 야생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나'도 있었다. 그 순간에 나의 새로운 면을 즐기는 데야 실패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20여 일의 여행보다 오랫동안 이 여행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내 앞에 놓여있으니 실패라는 결론은 일단 접어두고 싶다. 고로 이 여행기는 나의 또 다른 '나'를 제대로 환영하고 기억할 긴 시간의 시작점이다.

 

다섯 시간을 걸어 캠핑장으로 향하는 길. 모든 것은 얼굴에 설명되어 있다.

Departure


티켓을 내밀면 짐가방이 컨베이어 벨트에 오르고 시야에서 사라진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컨베이어 벨트로 실려 나오는 짐가방을 찾는다. 극도로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 시간을 죽이려 걸터앉은 구석 자리는 비행장이 꽤나 잘 보이는 위치다. 승객들을 뱉어낸 비행기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다른 승객들을 싣고 활주로를 미끄러져 나간다. 산더미 같은 짐가방이 꼬리에 꼬리를 문 트레일러는 기다란 몸을 이끌고 곧 출발하는 비행기를 향한다. 비행기 출입구에 연결될 계단은 길을 잃은 모양새로 비행장에서 제 짝을 기다린다. 생각이 닿지 않던 편안함의 이면에 사람이 언제나 있었다.


비행기에 탈 때면 하늘을 날아서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지, 혹은 믿고 싶지 않아서인지, 언제나 이륙 즈음 고막을 감싸는 이어폰이나 귀마개를 끼고 잠들어버린다. (전날 밤새 짐을 싸서 피곤함에 쓰러져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수영을 좋아하지만,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고 물이 투명하지 않아 아래를 볼 수 없을 때면 몸에 익은 헤엄치는 방법도 잊은 채 가끔은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채로 허우적대고 만다. 이번에는 전 날 밤 충분한 숙면을 취해서인지, 이륙부터 비행기가 상공에 안정적으로 접어들 때까지 완전히 깨어있었다. 발 끝에 닿을 땅이 저만치 아래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비좁은 저가항공 비행기 좌석에 불편한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유료인 기내식을 부스럭거리며 먹는 주변의 소리에 마른침을 삼킨다. 우리가 리스본 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던 것이 7월 6일 밤 8시 50분. 마침 유로 2016 포르투갈과 웨일스의 준결승 경기가 펼쳐지던 때였다. 비행기에 발이 묶인 승객들에게 캡틴은 인사말과 동시에 축구 경기 중계를 한다. 포르투갈이 골을 넣을 때마다 캡틴은 사람들을 궁금케 하는 게 즐거운 듯이 골 소식을 어지간히도 뜸을 들여 전했고, 그렇게 우리는 도착할 때까지 두 차례 이례적인 캡틴의 기내 방송을 들었다.


세 시간의 비행 끝에 얼굴에 닿은 후덥지근한 첫 리스본 공기.


스위스의 더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순한 여름 날씨에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습하고 더운 포르투갈의 여름의 정점에 진땀을 빼며 당일에 급하게 예약한 호스텔로 향했다. 호스텔에서 가까운 지하철 Rato역에서 지상으로 나오자 말로만 듣던, 눈으로만 보던 오래된 도시 리스본이 눈 앞에 있다. 길이 좁아 한 사람밖에 걷지 못하고, 누구라도 맞은편에서 걸어올 때면 곤란한 상황이 일어나는 도시. 아스팔트 대신 작은 돌들을 바닥에 깔아놓아 마치 콜라주 작품이라도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도시. 낡은 건물들과 도로명을 나타내는 표지판에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도시.  



축구 경기의 결과 때문일까, 도시의 선천적인 얼굴일까.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다. 취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청년들의 무리, 낯선 도시의 밤을 가로지르는 여행자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라도 하다는 듯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중년 부부. 머릿속에서 밤 아홉 시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어둠과 함께 고요가 내려앉은 스위스가 그려지니 피식 웃음이 난다. 세 시간 거리의 두 도시, 이렇게도 다르다니.


새벽 한 시를 넘긴 시간,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는 동안, 호스텔 안의 바에서 처음 만난 낯선 여행자들의 호기심 가득하고 긴장이 얼마간 섞여있는 피상적인 대화가 들려온다. 취한 얼굴들을 스치며 방으로 향하는 계단, 웬 남자가 관심 있게 우리를 들여다보다 303호가 아니냐, 같은 방이라며 아는 체를 한다. 6인 믹스 돔인 303호는 우리와 같이 NOS Alive 음악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온 네 청년 그리고 우리뿐. 팬티바람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잠든 나의 여행 동반인을 포함한 다섯 청년들 사이에서 괜히 뒷목이 뻐근해짐을 느끼며 잠을 청했다. 왜인지 잠을 설쳤던 포르투갈의 첫날밤이 그렇게 갔다.

 

Photography by Michael Fund. All rights reserved.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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