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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Dec 01. 2023

신들의 섬에서 만난 서핑

발리 두 달 살기

작년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실직하게 되었다. 나의 생리적 시간은 시시각각 지나가고 있고 우리는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될지 모른다. 아직 못 해본 게 많고 위로금으로 받은 보너스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때에 따라 따뜻한 보금자리이기도 안온한 감옥이기도 했던 집의 새로운 세입자를 찾았고, 살림 가지를 가족들의 다락에 밀어 넣었으며, 스위스 당국에 전출신고를 했다. 유럽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기 전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기 전, 장기간으로 여행을 가거나 워킹홀리데이를 자주 간다. 이걸 갭이어라고도 하는데, 한반도에서 성장한 청년인 나는 그럴 심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떠났다. 만 서른둘의 나이에.


이 시리즈는 안식년 중 여행을 하면서, 비체육인으로서 살았던 과거를 청산하고 내 몸과의 새로운 관계를 쌓아 올리게 된 성장 이야기이다. 




이것은 서핑에 대한 예찬이자 사랑 고백이다. 발리에서 나는 빤하게도 서핑에 빠져버렸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된 사람, 발리, 서핑.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키워드의 조합이다. 그런데 이건 그다지 뻔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발리에서 서핑 캠프를 갔다고 했을 때 동생이 가장 자주 물은 질문은 “패닉 안 해?”이며, 나의 서핑 동영상을 공유했을 때 아빠에게서 온 답변은 “운동 신경이 마이 좋아졌네…ㅎ”였다.


때는 바야흐로 새천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 한 학년에 반이 두 개뿐인 시골의 초등학교로 우리 두 자매는 전학을 갔다. 보통 여덟 개에서 열 개 정도 있어야 할 반이 두 개뿐이라는 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선수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된 육상부의 예를 들어보자. 육상부를 이끌던 건 키가 크고 옅은 갈색빛의 눈동자를 가진, 가발이 태가 꽤 나던 선생님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학생은 선수로 양성해 주어야 할, 교육인보다는 체육인의 것에 가까울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학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우리 자매는 체력 테스트를 하게 되었고 내 동생만이 얼결에 육상부로 들어가게 된다. 속력을 내지 못한 그 몇 초간의 달리기가, 더 높이 오르지 못한 그 몇 밀리의 높이 뜀이 나를 평생 ‘비체육인’이라는 주홍 글씨로 낙인찍을 것을 알았더라면. 학생의 수도, 선수의 수도 적었기에 동생은 투포환, 높이뛰기, 달리기 등 종목을 불문하고 학교를 대표하는 육상선수가 되었다. 그는 방과 후 매일 작고도 넓은 학교 운동장을 뙤약볕에 몇 바퀴씩이나 뛰어야 했다. 아직 학생 인권 따위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테마가 되지는 못한 2000년 초반이었다.


도 대회에서 학교를 대표해 출전하고 수상하면서 학교에 영광을 안겨준 내 동생의 업적은 시골 초등학교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진다. 그 해를 기점으로 나는 평생을 ‘운동 신경이 조금 떨어진 애’로 살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역사는 ‘비체육인’이란 낙인의 끊임없는 내재화로 이어진다. 나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움직임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믿음은 편리했다. 숨이 가빠지거나 땀이 나는, 움직임이 으레 가져다주는 반응들도 지극히 불쾌한 감정과 상황으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음주가무가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였던 시절도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내가 평생 스포츠를 해오며 살았던 남편을 만난 것은 신의 축복인가 저주인가. 어려서부터 하키와 축구를 하면서 자랐고 주말이면 산과 들을 걷고 오르면서 시간을 보내온 그였다. 우리 관계의 역사는 그가 나를 내 고치 밖으로 끌어내고 나는 다시 들어가려 애쓰는 과정의 반복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는 9년에 가까운 세월 간 게으른 나를 인내해 주었고 결국 나의 ‘비체육인’ 역사에 감히 등장할 수 없었던 많은 항목들을 써 내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하이킹, 걷기,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롤러블레이드, 보트 타기, 스탠드업 패들링, 스노우슈즈 하이킹, 스키, 스케이트보드, 아이스 스케이팅, 등산 그리고 마침내 서핑) 이런 활동들은 운동장 몇 바퀴만 돌아도 헛구역질이 나던 나의 체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 주었는데, 그제야 체육인들이 지닌 것은 체력, 호기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연료 한 그릇
신의 축복


자신을 보는 관점의 차이: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경험을 이어나가면 내 몸이 진정으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것은 또한 한계치를 새롭게 세우게 되면,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활동들이 쉬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예컨대 10킬로 달리기를 해낸 사람에게 3킬로를 달리기란 어렵지 않은 것이 되고, 8시간 동안의 등산을 해내고 나면 2시간 산책은 누워서 떡 먹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마 못할 거야’가 나왔어야 할 많은 순간을 이제는 ‘어쩌면 해낼 수 있을지도’가 대체하게 된다. 


'먹다'에 대한 인식의 변화: 날씬해지기 위한 강박이 있는 자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죄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는 자에게 먹기란 연료로써의 음식을 섭취하고 소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몇 시간 산을 오르고 내리고 나면 사과건 샌드위치건 입에 배어 무는 무엇이든 그 맛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두 시간에 가까운 서핑 세션이 끝나고 나서 먹는, 기름이 넉넉한 미고랭을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기분은 또 어떤가. 움직인 만큼 우리 몸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작용이 몸에서 일어나는 걸 관찰하게 된 건 칼로리를 세던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쁨이다.


고꾸라지는 서핑 초보의 영상 일기가 궁금하시다면 >>

https://youtu.be/PBAhjWCweJw?si=vyIu1DaokF_W1KV8


PC: https://www.instagram.com/michael_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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