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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Feb 05. 2020

누군가를 위한 유서

아직 죽을 생각은 없지만

* 들어가기에 앞서


아래 글은 글쓰기 모임에서 써 볼 기회가 생겨 적은 것이니 혹여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살고 싶어서 운동도 시작했어요. 제가 제일 오래 살 거예요:)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삶의 마지막을 알리는 글의 첫 문장을 고민한다는 게 조금 웃기긴 하다.

어쩌다 보니 오늘까지 살았던 것처럼 어쩌다 보니 나 먼저 떠나게 되었어. 아쉬움은 없다고, 즐거운 삶이었다고 쿨하게 인사하고 싶지만 사실은 아쉬운 게 많아. 이루고 싶었던 것, 꿈꿨지만 겁이 많아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이 자꾸 떠올라서. 그렇다고 미련이 덕지덕지 남았다는 뜻은 아니야.


돌이켜 보면 나는 외로움을 좋아했지만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날을 살았던 것 같아. 힘들고 우울했던 날에도 나를 꺼내 준 건 사람이었어.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들 내 빈자리에 잠시 혹은 오래 아파하더라도 결국은 이겨 내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단 하나, 엄마,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엄마, 나는 언제나 엄마보다 오래 살고 싶었어.

버스 창문이 다 깨질 정도로 큰 사고가 났던 날에도, 귀가 멍하고 눈앞이 까매서 시야가 흐릴 만큼 심하게 아팠던 어느 날 밤에도 '내가 죽으면 엄마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 열두 살때부터 학교 대신 공장을 다니며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던 엄마,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와 결혼하게 된 바람에 자기 인생을 누려 본 적 없었던 엄마, 아빠와 헤어지면서 상처받은 엄마,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두 어린 딸을 그 작고 왜소한 몸으로 끝까지 키워 낸 엄마.

흔히들 '엄마는 강하다'고들 하지만, 나한테 엄마는 너무나도 약하고 여린 사람이었어. 너무 어렸던 날, 엄마 우는 소리가 들려오던 밤이면 어쩔 줄 모르고 자는 척을 했던 시절을 기억해. 이제야 우는 엄마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을 만큼 컸는데, 이제는 내가 마른 등을 다독여 줄 수 있는데,  겨우 나아진 엄마 마음에 또 다른 바위 하나를 얹어 주게 돼서 미안해. 나는 마지막까지 철없고 어린 막내딸인가 봐.

그래도 나는 엄마가 끝까지 살았으면 좋겠어. 나를 키우느라 삶을 희생했던 엄마가 먼저 떠나는 나 때문에 남은 삶마저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은 듯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꼭 그랬으면 좋겠어.


아빠에게도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 가끔 언니랑 "그러게 얌전히 우리랑 살았으면 지금쯤 딸들이 주는 용돈 받으면서 편하게 살았겠지, 얼마나 좋아?" 하고 농담조로 아빠를 놀리곤 했지만 정말 원망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어. 아빠에게도 아빠 나름의 삶이 있었겠지. 그때 아빠가 선택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겠지.

이제는 아빠도 나이가 들었는지 그렇게 무뚝뚝하던 사람이 오랜만에 딸들을 만나 꼭 끌어안고 "보고 싶었어." 하고 말하던 걸 듣고 사실 많이 놀랐어. 아빠만큼 무뚝뚝한 딸이라 '이제 다 괜찮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해 주지 못했던 거 미안해. 아빠는 분명 내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책하면서 괴로워하겠지. 그러지 마. 나는 이제 그냥 다 괜찮아.


참나, 쿨하게 인사하고 싶다고 해 놓고 완전히 찌질한 구구절절 편지를 썼네.  이제 와 이런 말하면 그다지 설득력은 없겠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삶이었어. 다음 생에도 똑같이 너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냐 묻는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답할 수 있을 만큼.


꼭 하나 지켜 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나는 언제나 내 장례식이 웃음과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니까 칙칙한 검은 옷으로 맞춰 오지 마. 그냥 각자 가장 아끼는 예쁜 옷을 입고 와 줬으면 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보고 떠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라. 그리고 노래는 조금 청승맞긴 한데 The Band Perry의 'If I Die Young'을 틀어 줘. 가사는 아래에 짧게 써 둘 테니 한 번씩만 읽고 와 주면 더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웃으며 떠난다.

고마웠어. 다들 사랑해.



If I die young bury me in satin

내가 젊은 날 떠난다면 날 비단으로 감싸 묻어 주세요

Lay me down on a bed of roses

나를 장미꽃으로 만든 침대에 뉘이고

Sink me in the river at dawn

새벽녘 강 속으로 가라앉혀 주세요

Send me away with the words of a love song

사랑의 노랫말로 날 떠나보내 주세요


The sharp knife of a short life

날카로운 칼날 같은 짧은 인생이었지만

Well, I've had just enough time

그래도 나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어요


So put on your best boys

그러니 모두 가장 좋은 옷을 입어요

And I'll wear my perls

나는 진주 목걸이를 할게요 




어느 초여름이었다. 출근과 퇴근, 집과 사무실만 반복하는 삶이 지겨워 변화를 찾고자 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격주로 6회, 다 합쳐 봐야 겨우 세 달을 만나는 모임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어떤 자극이 없으면 글 쓰는 것마저 귀찮아하는 내게 동기가 되어 주었으니까.

모임의 마지막 글쓰기 주제는 바로 '유서 쓰기'였다. 안타깝게도 글을 쓰는 마지막 모임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모임 드라이브에는 글을 올려 두어야 할 것 같아 주말에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당장 내 삶이 다음 주에, 아니 내일 끝나 버린다면 나는 무슨 말을 남겨야 할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떠난 후 걱정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봐도 결국 남는 것은 하나였다.


엄마.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또 어디서든 만난 모든 소중한 사람들은 나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면 물론 마음을 다해 슬퍼해 줄 테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가로막진 못할 것이었다. 내 빈자리에 잠시 아파하더라도 그들은 다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만큼은,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우리 엄마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슬픔을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마음의 상처만큼 몸이 상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나의 유서는 엄마를 위한 글이 되어야만 했다.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청승맞게도 사람 많은 카페 한복판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정말 죽을 생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남들보다도 넘치는 편이며, 당장 집에 가면 엄마가 있는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민망하긴 했지만 안 그래도 헤픈 눈물샘은 자의지로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내내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글을 쓰고 돌아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니 아주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엄마보다 먼저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당신이 조금만 덜 아파했으면 좋겠다. 이미 젊은 날의 엄마를 희생하며 살도록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이제라도 엄마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슬픔이 엄마를 덮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엄마, 모든 삶의 위협을 왜소한 몸뚱이로 전부 맞으며 살아온 단단한 엄마라 해도 더 이상의 슬픔은 없었으면 좋겠다.




너무 솔직하게 적은 감도 없지 않아 있고,

내용이 내용인지라 몇 달 동안 계속 브런치에 올릴까 말까 고민하던 글인데

안 올리면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인생 최대 목표인 소시민이므로

누구든 이 글을 보며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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