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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Oct 25. 2018

나는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라났다.

나는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라났다.


나의 엄마는 그 시절 오남매 집안의 둘째로 대학은커녕 중학교조차 가보지 못한 소녀로 자랐다. 겨우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은 엄마의 인생에 커다란 콤플렉스였다.


그런 엄마의 평생 소원은 '교복을 입어 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만한 딸 없다고, 항상 엄마를 챙기는 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여전히 엄마의 소박한 소원 하나를 모르던 철부지 막내였다.


이제는 나이를 먹은, 쉰을 웃도는 네 자매가 얼마 전 여행을 떠났다. 종종 전화를 걸어 "엄마, 덥지는 않아? 좋은 데 많이 다녔어?" 하고 묻던 내게 엄마는 카톡으로 사진 몇 장을 보내 주었다. 한옥마을에서 대여해주는 교복을 입은 채 활짝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이었다.


"딸아, 엄마의 평생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하얀 카라의 옛날 교복을 입고 웃는 엄마는 20대의 나보다 훨씬 더 어리고 여리게만 보였다. 그 가냘픈 몸뚱이에 안쓰러움과, 애틋함과, 미안함이 목구멍 안 쪽에서 울컥 샘솟았다.


동네 친구들의 교복을 곁눈질로 보며 혼자 마음을 삭혔을 열여섯의 왜소한 소녀. 꿈을 꿀 여유조차 없었던 그 소녀는 제 젊음을 기꺼이 두 딸에게 내어 주었다. 상처 하나 없던 고운 손등에 주름이 지고, 그 위로 내려앉은 한숨과 눈물이 검버섯으로 피어날 때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젊음을 야금야금 먹으며 자라났다. 이제는 그 젊음이 너무나 희미해져서,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연약함이 아프기만 하다.


나는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라났다.


"교복 입었어, 엄마가."


혼잣말처럼 되뇌이던 한 문장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모르는 엄마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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