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기억은 없다. 수학여행도 아니고, 스카우트나 아람단 같은 단체도 아니었다. ㅇㅇ여고 전통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지리산에서 2박 3일 캠핑을 했다. 출발 전 날, 강당에서 조별로 미리 텐트도 점검했다.
첫날은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 치고 밥 해 먹는 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은 자욱한 안개가 신비롭기만 했다. 멀리서 보면, 그러니까 산 아래에서 본다면 이건 구름이 아니겠냐며 여고생들 마음은 둥둥 구름 속을 떠다녔다.
둘째 날은 곧,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온 힘을 다해 캠핑을 즐기고 싶었다. 게다가 밤에는 공연단이 오기로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캠프 파이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공연단의 선발대가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인정하기 싫은 비 소식이 이어졌다. 큰 비가 예상되어 공연이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갑자기 큰 비가 내린다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눈앞의 안개는 쉽게 걷히지를 않더니 결국 비가 내렸다. 꼼짝없이 텐트에 갇혀서 우리는 웃음을 잃었다. 그런데 빗소리와 함께 땅을 파는 거친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비를 맞으며 텐트 주위에 물길을 내고 있었다. 낯선 얼굴이지만 우리를 도와주시는 게 감사했다. 온몸으로 비를 맞고 계셔서 있는 대로 우산을 가져갔다.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우산을 씌워드렸더니, 고마워하면서 공연단 선발대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알고 보니 우리 반 담임선생님의 교회 대학부 청년이었다. 예정된 공연단은 그 교회 뮤지컬팀이었던 것이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내려서 공연은 물론, 오후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안전하게 텐트에 머물면서 끼니때에 겨우 밥을 해 먹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들은 그랬다.
그는 우리 반 텐트들을 일일이 점검해주시고, 나는 그를 뒤따르며 계속 우산을 씌워드렸다. 교회에 다니는 나는 중학교에 이어 같은 재단의 미션스쿨을 다니게 되어 더욱 신앙심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냥 공연단도 아니고 교회에서 오신 분이라니 더욱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어느 정도 작업을 마치고 세면장에 갔다. 지붕이 있는 세면장에서 수돗가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대게는 공연 이야기였다. 해외에도 초청받아서 다녀오기도 했다니, 그 공연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게 혹시 위문편지 같은 거 써줄 수 있는가를 묻는다. 곧 군대에 간다는 그에게 나는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여고시절 단체 캠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전에도 없었던 학교 단체 캠핑은 이후로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