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번 해봤습니다'는 이제 곧 유명해질 브런치 매거진 이름이다. <소년의 레시피> 배지영 작가님의 글쓰기 강연회가 끝나고 에세이 쓰기 2기 선생님들 몇 분과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브런치를 시작하신 선생님께 도전기를 써보라는 작가님. 즉석에서 매거진 이름까지 술술 나온다. 혼밥도 곧잘 하시는 우리 선생님께서 과연 앞으로 어떤 도전기를 들려주실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사실 나는 혼밥을 싫어한다. 싫어한다기 보다 혼밥을 못 한다. 나에게 혼밥은 그저 외로움이었기에 결국 첫 혼밥은 마지막 혼밥이 되어 버렸다. 혼자서 어디든 잘 돌아다니고,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은 할 만 했는데 유독 식당에 들어가 밥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더라.
대학 다니면서 2년 정도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기 전이었고 내가 만난 약사님은 일일이 개인 차트를 만들어 증상과 처방을 기록해 관리하셨다. 약장 메인에는 손때 묻은 차트들이 두 칸 빼곡히 꽂혀있었다.
약사님이 한 번 바뀌면서 약국을 확장한 후에도 나는 계속 차트 정리를 담당했다. 의약분업 이후로는 처방전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했다. 그렇다고 차트가 사라진 건 아니다. 사상체질로 한약조제도 하셨기 때문에 단골손님들의 체질을 파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병원에 들리지 못하고 오신 손님들도 계셨기에 여전히 동네약국의 역사를 자랑하며 자리를 지켰다. 어찌보면 내 일거리만 추가된 셈이다.
학기 중에는 6시반까지 출근하기가 힘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10분 남짓 걸어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저녁 먹을 여유가 없었다. 퇴근하는 11시까지 버티기위해 길거리에서 핫도그나 샌드위치 같은 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어느 날 조금 여유가 있어서 분식집에 들어갔다. 혼자라는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막상 4인 식탁을 차지하고 음식을 하나만 주문해 앉아있기가 민망했다.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속으론 생각이 많아진다. 아무도 관심있게 쳐다보지 않았을 텐데, 어쩐지 나를 불쌍히 여기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기까지 했다.
'나는 어쩌다 이 시간에 혼자 앉아서 저녁을 먹는 건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먹으면 또 얼마나 잘 먹어보겠다고 식당에 혼자 들어왔나?',
'계산만 하고 그냥 나가버릴까?'
별별 생각에 먹는 둥 마는 둥 몇 수저 뜨다가 바쁜 척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나와버렸다. 무슨 자존심인지 그냥은 못 나오고 바쁜 척을 하게 됐다. 다른 사람을 의식한 행동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를 의식한 행동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위로가 되고 어깨를 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다시 도전해보려고 "김치볶음밥 하나 주세요."라는 대사를 연습하기도 했지만, 막상 문을 열지는 못했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거나 사람이 많았거나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나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되더라.
혼밥을 시작으로 혼자 영화를 봤다거나, 혼자 여행했던 이야기를 나누시는 우리 선생님들. 그 사이에서 나는 혼밥으로 기죽었던 스무 살의 나를 찾아가 꼭 껴안아주었다.
작가님의 글쓰기 강연은 다시 나를 쓰는 사람으로 인도한다. 유쾌한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무료였을 뿐 아니라 공복 강연이었다니, 열정적인 가르침에 감사할 따름이다.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나는 참 복이 많다. 그 길을 함께 갈 따뜻한 분들과 한길문고 문 닫는 야심한 시간까지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자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어서.
걸어오는 길에 대학원 나왔냐는 소리를 들었다. 2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1년간은 휴학까지 해가며 겨우 졸업장 받았는데 대학원이라니. 어디서 그런 소문이 났을까? 기분은 좋았다. 뭔가 있어보이는 이미지(웃음). 어쩐지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진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아직 요란한 빈수레임을 스스로 잘 알기에 들키기 전에 부지런히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