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이랑 넓은 마당에 대나무를 펼쳐놓고 기계처럼 말없이 대바구니를 짜시던 우리 외할머니.
노나리 작가님의 돌아갈 곳이 된 할머니의 모습에서 읽는 내내 외할머니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분이 담양 할머니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어느새 나는 울진과 담양을 한데 뒤섞고 말았다.
중풍으로 광주에 나와 입원하고서야 평생 틀어 올린 머리를 내린 할머니. 병실에서 후드득후드득 당신 엄마의 머리칼을 단발로 내려드린 우리 엄마. 그때만 해도 금방 퇴원해서 담양 집으로 가실 줄 알았는데. 열 살, 어린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 모습이 떠올라 이 대목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중요한 것은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삶 속 작은 기쁨들을 발굴해내며 나만의 영역을 넓혀 나간 묵묵한 발자취일 테다. 그 발자취는 어쩌면 식물의 생과도 닮아 있다. 바람에 속절없이 날려간 씨앗이 우연히 뿌리내린 곳에서 최선을 다해 줄기를 뻗고 잎을 틔우며 꽃을 피우듯. (중략) 모두들 붙들린 발목에 마음이 뒤엉켜버린 전염병 시국에도 할머니는 당신의 테두리 안에서 하루하루 밭과 정원과 화분을 돌보며 평정을 잃지 않는다. 광합성하듯 홀로 있어도 늘 충만한 당신. 나는 당신의 그 단단한 기운을 그리며 이 시국 속 하루하루를 버틴다.' 78쪽
사적인 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도록, 친히 사적인 여행기를 들려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더 늦기 전에 외삼촌이 사시는 외가에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 내게도 이렇게 돌아갈 곳이 생겼다.
울진 하면 특산물 대게 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믹스커피 한 박스를 사들고 찾아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어버렸다. 일단 내일 아침은 해가 뜨는 동쪽, 울진 쪽을 향해 인사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