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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머리영 Jul 15. 2021

사업은 다음 생에

취미열전

시 필사를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위클리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이번에 주어진 주제가 취미. 군산으로 이사 와서는 완전히 손에서 놓았지만, 과거 열심히 갈고닦았던 작품들이 떠오른다. 이참에 취미 자랑이나 한 판 해봐야겠다.




첫째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랑 집에 있을 때다. 가까이 사는 사촌언니가 집에 놀러 왔다. 쭈그려 앉아서 젖을 먹이고 있는데, 손수 만든 리본을 보여준다.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딸 둘을 키우는 엄마의 눈을 사로잡았다.


"언니가 딸이 있었으면 얼마나 이쁘게 키웠을까?"

"긍게. 이놈들이 인자 컸다고 안 할라근다. 이놈 시끼들. 효영이 니가 배워야 겄어. 내가 갈쳐주께."


만들기, 그리기와 같은 미술 쪽은 전혀 재능이 없다고 판단, 일찌감치 덮어버린 영역이다. 그에 반해 언니는 손재주가 좋았다. 어려서 외가에 가면 뭐든 뚝딱뚝딱 싹둑싹둑 만들어내는 언니가 그렇게 신기할수가 없었다.


특히 칼로 깎은 가지런한 연필들이 좋았다. 규칙적인 연필 깎는 소리도 기억난다. 그윽그윽그윽. 마지막에 쌱쌱쌱 심을 다듬는 소리까지. 나는 지금 연필을 깎으래도 그때의 언니 솜씨만 못하다. 그러니 그냥 언니가 만들어다 주는 리본을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쁘게 묶는 포장 리본이랑 달라. 이건 재단만 잘하면 돼. 진짜야. 리본 길이만 잘 재면 된다고."


그렇게 시작된 리본공예에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특히 큰 아이 친구 세진이 엄마까지 셋이서 동네 리본 샵을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리본공예 초급, 중급 과정까지 마스터하고, 신상 아이템이 나오면 또 한참 만들었다.


5월이면 카네이션 볼펜을 쌓아두고 만들었. 부담 없는 선물로 인기가 많아서 때로 주문을 받아 판매하기도 했다. 명절을 앞두고는 전통 리본이 인기가 많았다. 언제나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리본 팔아 돈 벌었단 소리는 할 수 없다. 장사꾼이 하나 있었어야 했는데,  그냥 취미였다.


동사무소에서 하는 생태지도사도 같이 시작해서 2년간 재밌게 농사도 지었다. 적성에 맞았는지 숲 해설사 쪽으로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군산으로 오면서 길이 막혔는데, 최근 나는 한길문고에서 생태지도사 타이틀로 독후활동을 하게 되었으니 새로운 길이 열린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옷 만드는 친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재봉틀도 배웠다. 5가지 기본 옷 만들기를 배워가며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혔다. 셋 다 재봉틀이 없어서 주변에 수소문하기도 하고 중고로도 알아봤다. 사실 나는 리본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재봉틀을 살 생각까지는 없었다.


발 빠른 막내 희재 먼저 중고로 샀다. 언제부턴가 세진 엄마가 아닌 희재라는 이름을 불렀다. 나도 가은 엄마가 아닌 효영이 언니였고. 애들 친구가 엄마 친구가 된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한 사이다.


신랑의 군대 동기 중에 가장 친한 분이 동대문에서 원단 판매를 하신다. 카카오스토리에서 내가 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을 시고는 원단을 잔뜩 보내주셨다. 친척 중에 오래된 재봉틀이 있어서 받아왔는데 골동품 수준인지라, 우선 희재 것으로 연습하고 후에 각자 장만했다.


큰 딸 생일이 다가올 무렵, 아이에게 갖고 싶은 것을 물었더니 발레복이란다. 당시 어린이집에서 발레를 배웠는데, 몇 명은 발레복으로 갈아입고 한다는 것이다.


한 벌 사주긴 하겠지만, 어쩐지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원단이 여러 종류가 있으니 머릿속에 디자인이 그려지고 패턴이 없어도 거침없이 가위질을 했다. 세진이도 발레복이 없었기에 같이 아이디어를 내서 열심히 만들었다. 당시의 기록을 카카오스토리에서 찾았다.



생일날, 하원 하는 아이들을 데려와 발레복으로 갈아입혔다. 가은이는 너무 마음에 든다며 다른 것을 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세진이도 마찬가지였다.


재봉틀을 장만하고는 홈패션을 제대로 배울 곳을 찾았다. 당시 선생님이 푹 빠진 가죽공예, 팬시우드까지. 군산 가면 써먹으라고 열심히 밑천을 장만해주셨다.


선생님 솜씨가 좋으셔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핸드메이드 축제에도 참여하고, 금남로나 야시장 행사에서 같이 부스를 지키기도 했다. 게다가 나중에는 신세계백화점에까지 핸드메이드 상품으로 진열, 판매되었다.


군산으로 이사 온 나는 열심히 가르쳐주신 밑천을 그만 짐으로 쌓아두고 말았다. 가은이가 피겨를 시작해서 매일 전주에 다녀와야 했고, 막내를 낳아 키우느라 그 어떤 짬도 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홈패션을 배우기 시작한 골동품 재봉틀의 주인에게 내 재봉틀을 드렸다. 군산 와서는 바지 밑단 줄일 일도 없었던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아서다. 조만간 원단들도 정리해서 넘겨야겠다. 처음부터 혼자 시작한 취미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 예전의 기분이 나지 않는다.


못한다고 덮어버린 만들기 영역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다. 이제 그리기 차례인가? 시를 필사하기 시작한 모임은 시화 엽서 나눔으로 영역이 확장되어 곁들일 그림이 필요해졌다. 게다가 이번에 시화 엽서를 모아 책으로 묶어보기로 했다. 야심 차게 함께하겠다고 신청했으니 취미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 이번 기획도 판매하고자 함이 아니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생에 사업은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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