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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Dec 28. 2022

옮긴이는 김선양

나는 도봉구 쌍문동에서 산다. 어릴 때부터 도봉구에서 살아온 남편을 만나 자연스럽게 이곳에 신혼집을 얻었다. 아파트 앞 큰길에 나서면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비교적 한적한 동네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 근처로 직장을 옮겼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결혼하고 꽤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한때는 희망을 품고 병원에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일에 묶여,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걱정만 하고 있었다. 둘 다 적지 않은 나이에 한 결혼이었다. 처음 몇 년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때가 되면 생기겠지 했다. 시간은 흐르고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덜컥 겁이 났다. 아, 나는 자식과는 인연이 없구나. 남편에게 미안했다. 남편은 자상하니 좋은 아버지가 될 텐데. 하지만 남편은 ‘아이는 없어도 된다. 우리 둘이 살자.’ 했다. 좋은 아버지가 될 것 같은 남자가 그런 말을 하니 눈물이 났다.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 일이 인생에 몇 가지쯤은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아이인 듯싶었다. 우리 부부는 다니던 난임 병원 대신, 야구장에 갔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산으로, 들로, 강으로, 바다로 나갔다. 남편의 말들이 나를 안심시켰을까? 아니면 아직은 때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일까? 몇 달 후 아이는 깜짝 선물처럼 우리에게 왔다. 기쁘면서도 신기했다.


오랜 시간 기다렸던 아이도 키우기는 힘들었다. 단조로운 생활들이 이어졌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이 반복되었다. 조그만 입으로 젖병을 빨며 쑥쑥 자란 아이는 기고 앉고 서더니 걸었다. 아이가 클수록 할 일이 늘어나 몸은 바빠졌고 마음은 허전했다. 아이는 좋았지만 아이 곁에 24시간을 있어야 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시작은 아이에게 읽어줄 좋은 그림책을 공부한다는 핑계였다. 두 돌이 지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림책을 배우러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뭐라도 좋았던 것 같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핑계라면 말이다. 그렇게 그림책을 공부하고, 임신과 육아로 멈췄던 일본어 전공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10시부터 4시까지, 한정된 시간이어서 최대한 아껴 썼다.


함께 그림책을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스터디를 하고 워크숍을 열었다. 마포로 강남으로 좋은 강의가 있다면 찾아갔다. 그림책을 사들이고 해외에서 원서를 주문했다. 영어와 일본어로 된 그림책을 보며 그 세계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듣게 된 <일본 그림책의 세계>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구름빛’이라는 번역 그룹을 만들었다. 시간은 더디게도 빠르게도 갔다. 어떤 그림책은 몇 주 만에 번역이 완성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번역 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면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바로 답이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읽음’이라는 표시가 뜨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그렇다고 ‘읽음’이라는 표시가 곧 긍정적인 대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시간을 견디며 서로의 번역을 비평해주고 칭찬해주며 3년을 쌓아갔을 때,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기까지 수많은 밤들이 필요했던 것처럼, 나의 첫 번역 책이 나오기까지도 그랬다. 갑자기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처럼 말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왔다. ‘옮긴이 김선양’이란 글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글자가 주는 생경함에 놀랐다. 평생 쓰고 불리던 나의 이름, 특별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진 이름인데……. 여섯 글자 안에 응축된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한꺼번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랑의 메시지를 써서 아이에게 책을 선물했다. 메시지를 읽은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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