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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Dec 28. 2022

각자 다른 출발선


대학교 2학년을 앞둔 1998년 2월, 호주에 갈 기회가 생겼다. 당시 아이섹(AIESEC)이라는 ‘국제 경상 학생협회’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섹(AIESEC)은 경영·경제학과의 학생들이 기업에서 인턴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서 타문화에 대한 경험을 얻기도 하는 학생 자치 비영리 단체이다. 매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콘퍼런스’가 개최되는데, 그 해에는 호주에서 열렸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영어는 중학교에서 가서 배우는 과목이었다. 엄마는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중학교에 가기 전에 영어를 미리 배우고 가야 한다며, 6학년 겨울방학에 학원에 보내주셨다. 5살에 한글을 익히고 6살에 천자문을 줄줄 외웠다는 나는, 언어에 재능이 있었는지 영어도 잘했다. 영어를 읽고 쓰고 있으면 나 자신이 무척이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들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고 발음기호를 익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영어 문장을 유창하게 읽고 싶어서 카세트테이프로 문장을 듣고 따라 하며 공부했다. 그러면서 외국에 관심이 생겼다. 외국 여행을 하고 싶어 졌고, 기회가 된다면 유학도 가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은 포항으로 이사를 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가게를 하면서는 아이들 공부시키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 엄마는 큰고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큰고모가 아버지를 설득하여, 포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버지는 포항제철 하도급 업체에서, 엄마는 도시락 업체에서 일하셨다. 시골에서 살 때보다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대학 때 나는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학비와 방세를 내고,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마련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는 학습지 회사에서 학습지를 소책자로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호주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의 참가비와 여행경비를 낼 수 있었다.



출국 전에 필요한 것들을 의논하기 위해 가진 사전 모임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7명의 참가자 중에서 여자는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호주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그녀와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그녀는 전화를 걸어, 지금 차를 쓸 수 있는지 물었다. 얼마 후에 까만색 승용차가 나타나 양복을 차려입는 아저씨가 내리자 그녀가 아는 체를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아버지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운전기사였다. 그때까지 우리 집에는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는커녕 자가용도 없었다. 순간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주눅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분명히 열등감이나 상대적 박탈감 같은 감정이 뒤섞여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후 일정 때문에 물건들을 그녀의 집에 두기로 했다. 그녀와 내가 산 물건을 기사 아저씨가 차에 실어주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차는 한참을 달리다가 커다란 정문을 통과해서 멋지게 조경된 녹지공간이 있는 고급 주택단지로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1층에는 커다란 주방이 있었고, 주방 안쪽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그녀의 어머니에게 소개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서서 대충 고갯짓만 하고는 다른 사람과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에게 인사를 하거나 반겨주지는 않았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내가 그때까지 2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만난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고, 특별 전형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녀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이었고, 가진 물건들은 모두 명품이었다. 그녀는 원하면 언제나 차를 사용할 수 있었고, 외국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겨우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나와는 너무도 달랐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녀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마라톤 경기에서 나는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못했는데, 이미 경기가 시작된 것처럼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왜 그녀는 가지고 있는데, 나는 가질 수 없을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것처럼 꿈틀거릴 때마다 분노와 원망은 나의 부모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열심히 달렸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했다.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것 같아도 멈추지 않았다. 부모가 나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은, 내가 나에게 해 주었다. 그래도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그녀는 가지고 있는데, 나는 가지지 못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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