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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Dec 28. 2022

괜찮을 거야

“엄마, 나 배가 아파. 가슴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아이는 며칠 동안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큰일을 잘 보지 못했는데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상태가 점점 심해졌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며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동네 소아과에서 받아 온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아이를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사이에도 몇 번이나 화장실을 갔고, 매번 실패했다. 다행히 엑스레이와 소변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일주일 치 약을 받아왔다. 아이는 며칠 변비약을 먹더니 조금 나아진 듯하다가 다시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점점 가슴, 머리로 아픈 부위가 늘어났다. 더는 안 될 것 같아 대학병원으로 갔다. 장 초음파라도 해볼 요량으로 아이를 굶겨서 데려갔다. 의사는 아이의 상태나 발육으로 보았을 때 큰 병은 의심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했더니, 의사는 피검사를 권했다. 검사 결과에 이상은 없었다. 의사는 며칠간 약 복용을 중단하고 경과를 지켜보라고 했다.



아이가 아프니, 일상생활이 되지 않았다. 하루에 2~30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려, 유치원도 못 가고 외출도 불가능했다. 아이는 배가 아파서 잘 자지 못했고, 눈만 뜨면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지냈다. 아이의 변비와 통증 호소에 나는 지쳐버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나무랄 수도 없었다. 아이는 나를 닮아 예민하다. 내 목소리 톤이 조금만 달라져도 긴장한다. 나는 그 스트레스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대학병원을 다녀오고부터 아이는 차츰 호전되었는데, 내가 병이 났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에는 무기력해져서 누워만 있다가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가슴이 뛰고 불안해졌다. 평소에도 예민하고 불안, 강박이 있던 나는 아이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는 나에게 약을 먹으면 긴장이 어느 정도는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조금씩은 불안해하고 긴장하며 산다며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불안해하고 긴장하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는 다 느낀다며 엄마가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의사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울음이 터졌다. 아이가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화장실에서 끙끙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대신해줄 수 없는 게 괴로웠다. 혹시나 큰 병인가 싶어 대학병원까지 달려가며 불안했던 마음과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느꼈던 긴장감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나는 시골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병설 유치원을 다녔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들어,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했다. 갑자기 눈을 떠보니 버스가 낯선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고 불안해서 그만 울어버렸다. 버스에 탄 어른들의 도움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떤 오빠와 함께 유치원으로 갈 수 있었다. 오빠는 친절하게도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유치원 건물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그때부터 유치원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또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낯선 곳으로 갈까봐 불안했다. 길을 잃을까 걱정되었다. 그 즈음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은 배가 아파 결석했다. 꽤 오래 병원에 다녔지만 딱히 이렇다 할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나는 진짜로 아픈데 부모님이 ‘꾀병’이라고 하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프던 배는 유치원에 가지 않으면 괜찮았다. 나 자신도 ‘꾀병’인가 의심할 정도로 유치원에 가지 않으면 신기하게도 배가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했다.



혹시 아이도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걱정되었다. 아이에게 유치원에 가기 싫은지, 혹시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것도 좋고 가면 재미있다고 했다. 일단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배가 아픈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들어보니, 친구들이 놀릴까봐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참았다고 했다. 나는 아침마다 유산균을 먹이고, 먹을거리에도 신경 썼다. 아프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고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검사 결과에 이상 없으니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주고, 배와 등을 자주 쓸어주었다. 아이에게 해주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최대한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차츰 안정되었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만약 내가 유치원 때 배가 아팠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이를 나무라거나 ‘꾀병’이라고 몰아세웠을지도 모르겠다. 검사 결과도 괜찮다는데 뭐가 문제냐며 신경질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더라면 아이는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하다가 나처럼 유치원을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해 주고,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마음 편하게 해주고,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 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그 어떤 처방보다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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