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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Dec 28. 2022

同生


제주도 여행 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전화벨이 울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였다. 발신인은 엄마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탁하고 차분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여행에 앞서 그전 주말에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에 다녀왔었다. 엄마는 며칠 전에 다녀왔다고 해서, 나는 동생과 갔다. 동생은 가게 일이 바빠 한 동안 오지 못했다고 했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며 동생은 아버지에게 다음 주 어버이날에 오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우리 남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데 대부분 알아듣기 힘들었다. 잠깐 나를 엄마로 착각하기도 했다. 나는 다음 주 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시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내 마음대로 일정을 미룰 수도 없었다. 불안했다. 동생은 눈치를 챘는지 당장 무슨 일이 있겠냐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새벽에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연휴가 낀 주말이라 김포공항행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대구 공항행 표를 구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영주로 갔다. 내 고향은 경북 영주다. 나는 영주 시내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포장도로여서 길가에 있던 우리 집은 자동차 한 대만 지나가도 먼지가 풀풀 날렸다.



한창 무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가게는 손님들로 시끄러웠고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일었다. 아버지가 연신 호스로 물을 뿌려대도 그때뿐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우리 남매가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대여섯 살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길 건너 큰집 대청마루에 우리를 재워놓고 가게로 갔다. 우리가 조용하고 시원한 곳에서 낮잠을 푹 자기를 바랐을 것이다. 한참을 자고 있다가 먼저 깬 동생의 울음소리에 나도 깼다. 자다가 깬 동생은 낯선 곳에서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엄마, 엄마 하며 서럽게 울었다. 내가 동생에게 ‘울지 마. 울지 마. 누나가 엄마 데려올게.’라고 말하며 아무리 달래도 동생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동생이 계속 우니까 정말로 엄마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도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울음이 터졌다. 내가 누나니까 동생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겨우 두 살 더 많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동생이 우니까 나도 울고, 내가 우니까 동생도 따라 울었다. 그렇게 우리 남매는 남의 집 대청마루가 떠나가도록 서럽게 울었다. 한 명은 엄마를 부르며, 한 명은 울지 말라고 달래면서……. 그때 우리는 세상에 둘만 남겨진 아이들 같았다.



우리 남매는 크면서 많이도 싸웠다. 맛있는 반찬이나 간식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사소한 장난이 싸움이 되기도 했다. 더 커서는 서로 데면데면해졌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업 때문에 바빠서 마주치는 시간도 적었고 어쩌다가 마주쳐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대학 때는 다른 지역에서 다니다 보니, 겨우 명절 때나 보는 사이가 되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있었을 뿐, 애틋하고 사이좋은 남매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자 차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의논하고, 힘든 일을 같이 헤쳐 나오며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다.



장례식 내내 동생이 아버지께 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났다. 까만 상복을 입고 엎드려 절을 하는 동생의 넓은 등이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동생이 안쓰러웠다. 큰집 대청마루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던 동생이 떠올랐다. 이제는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어린 동생이었다. 동생이 가여워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보다 동생의 등에서 묻어나는 슬픔과 쓸쓸함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발인하는 날, 동생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고 나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엎드려 울었다. 넓은 등을 들썩이며 울고 있는 동생에게 다가가서 등을 쓸어주었다. 차마 울지 말라고 할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동생의 등을 쓸어주며 나도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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