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체력 겁쟁이의 두 번째 홀로서기
월요일이 되어 유심을 사러 나갔다. 호스텔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려 했는데 안장이 너무 높아 가랑이가 힘들었다.
다시 들어가 낮춰달라 했더니 이게 가장 낮은 거란다. 다리 짧은 게 죄지... 결국 길가 표지판 아무 데나 자전거를 묶어놓고 걸어 다녔다.
아르헨티나에서 유심은 아무 데나 팔지 않는다. 근처 끌라로를 찾아 헤매다 보이는 무비스타에 들어가 물었지만 그곳엔 유심이 없댄다. 묻고 물어 원래 목적지인 끌라로를 찾았다. (무비스타, 끌라로는 우리의 통신사 같은 곳) 그런데 아뿔싸, 유심 사는 데 여권이 있어야 했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 여권을 갖고 나왔다. 흑흑. 여행할 때는 꼭 여권을 갖고 다닙시다...
유심을 사고(10페소) 데이터 값을 냈다. 10일에 2기가가 150페소. 나중에 문자로 내가 데이터를 얼마나 썼는지도 확인 가능하지만, 스페인어로 나와 도통 얼마나 썼는지 모르겠더라. (번역기 돌려도 해석 불가) 유심을 장만하는 데 오전이 다 가고, 어딜 가지 고민하다 엘 아테네오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아르헨티나에서 버스를 탈 때 중요한 점!
타면서 목적지를 말해야 한다. 내릴 때 따로 교통카드(수베카드)를 찍지 않아서, 처음 탈 때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가 기계에 그에 해당하는 요금을 입력하고, 승객이 카드를 찍으면 요금이 나가는 시스템.
나는 이걸 몰라 우노 우노 uno uno(한 명이요) 이런 뻘짓거리를 며칠 했는데 그러면 제일 비싼 요금을 찍는다 한다......
엘 아테네오는 생각보다 평범한 거리에 있었고 일단 배가 고파 근처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 유명한 아르헨티나 소고기! 제일 많이 먹는다는 립 아이를 시켰다. 저게 반 덩이다. 여기 사람들은 위가 큰 듯. 직원이 샐러드 같은 건 안 시키냐 했지만 소고기만으로도 배가 부를 거 같았다. 예상은 적중해 감자튀김은 다 남겼다. 고기는 좀 느끼했다. 풀도 시킬 걸 후회했다. 먹고 나서 까페 꼰 크레마를 시켰다(에스프레소 꼰파냐 같은 것). 이 식당이 특이했던 건 크림을 따로 준 것. 마시는 사람이 그때그때 올려 먹는 식. 신기했다.
배를 채우고 윤식당에서 본 걸 따라 했다. 직원을 불러 "라 꾸엔따(la cuenta; 계산서)" 하고 말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르헨티나는 5-10%의 팁이 필수. 팁 포함 600페소를 두고 나가니 직원이 엄청 챙겨주며 잘 가라 인사한다. 왜 이리 친절하지? 팁을 너무 많이 줬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힌 엘 아테네오.
나는 서점이 좋다. 다독자는 아니지만 조용하고 책 냄새가 나는 그 공간이 좋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했다는 엘 아테네오도 참 좋았다. 보통의 관광객들은 굳이 갈 필요는 없다며 실망이라고 평하는 걸 많이 들었다. 관광지를 기대하고 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여긴 정말 그냥 서점이다, 그냥 서점. 근데 좀 많이 예쁜 서점.
나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여행 서적에 한국도 있나 찾아보고(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무슨 책을 많이 보나 구경하고, 음악 코너에서 탱고 책을 하나 골라 앉아 읽기도 했다(물론 사진만). 연말답게 입구에는 내년 다이어리도 많았다. 기념으로 2019 마팔다 스케줄러를 살까 보다가 스페인 공휴일이 잔뜩이라 그냥 두고 나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초록이 보이길래 충동적으로 내렸다. 웬 일본 정원(Jardin Japones)이 있었는데 월요일이라 닫혀 있었다. 일본인들은 여기까지 정원을 만들었나. 지도를 보니 근처에 큰 공원이 있어 그쪽으로 걸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웃통 까고 조깅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인라인 스케이팅도 하고, 보드 타는 연습도 하고, 가족끼리 바람도 쐬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외국 사람들은 풀밭만 보면 철푸덕 철푸덕 잘 앉는다. 뭐 깔지도 않는다. 누워 자거나 태닝도 한다. 개들이 볼일도 보고 그러는데... 그 속에 섞여 한가하게 책도 읽고 쉬었다. 오랜만의 광합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