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목을 그은 날

by 노란빛방울


출처: https://pin.it/5qRGhl7rP

​※ 폭력성과 비속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이 다소 잔인합니다... 혐오스러울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그와 나 사이에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저 검은 기류다.


​신랑을 처음 만났을 때, 탈색한 묶은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그의 험악한 인상이 무서웠다. 평소엔 다정하고 선한 사람이지만, 성냥개비에 불이 붙듯 화가 나면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본 사람은 내 표현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검은 기류가 나를 삼킨다. 물건을 부순다. 하루는 꽃병을 던져 거울도 깨뜨려 보았다. 평소라면 그는 져주었겠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분에 못 이긴 그는 내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려 그대로 패대기쳤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나도 그를 발로 차버렸다. 결국 몸싸움으로 번졌다. 그의 주먹이 내 얼굴 직전에서 멈췄다. 더 때려보라고 도발하자, 그는 나를 미개한 인간 보듯 쳐다보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컴컴한 안방에 혼자 남겨지자 생각이 멈췄다. 그 멈춘 틈을 타 악마가 속삭인다. "병신 같은 년, 또 남자를 믿었어?" 눈물이 떨어진다. "넌 죽을 수 있어. 죽어서 복수해. 쟤가 땅을 치고 후회하게."
그래, 저 씨발놈이 날 무시해서 그런 거다. 내가 얼마나 좆같으면 나를 약 처먹는 년이라고 개무시하는 거다. "맞아, 저 씨발새끼 목을 쳐 쑤시고 싶지?" 눈물이 더 흐른다. 이 악마 새끼는 틀린 말을 안 한다. 예리하고 똑똑한 놈이다.


상담사는 자해할 때 꼭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지 않냐며, 그 속삭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병신 같은 상담사. 이 악마 말이 맞는데, 씨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그래봤자 딱 두 명뿐이다. 내가 씨발, 이리 하찮게 살았다. 화장실로 향한다. ​신랑이 날카로운 것은 다 숨겼지만, 본인 턱수염 때문에 평소 쓰던 일자 면도칼은 그대로 두었다는 걸 잊고 있었나보다. 아주 좋은 물건이 내 손에 잡히자 흥분도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건 꽤 날카로워 긋자마자 스윽, 깊게 긁혔다.


당연히 존나 아프다. 그런데 존나 기분 좋다.
희열이 올라온다. 한 군데를 집중적으로 그어야 하는데 손이 떨려 조준이 쉽지 않다. 그래도 계속 그으니 하얀 속살이 살짝 보인다. 더, 더 그어야 한다. 다 왔다. 피가 흘러 잘 안 보이길래 손으로 대충 닦고 다시 시도한다. 조금만 더 그으면 죽을 수 있다.


​그때 화장실 문이 콰앙 열리더니 신랑이 "이 씨발년아!"라고 외치자마자 내 뺨을 두 차례 연속으로 갈겼다. 친오빠가 내 문자를 보고 신랑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정육점 사장인 신랑은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세겠는가?그런 남자가 뺨을 연달아 때리니 너무 아파서 "살려주세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전화기 너머로 친오빠는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신랑은 털석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제발, 나랑 몇 번을 약속했냐고, 왜 자꾸 이러냐고. 하루는 날카로운 것을 다 숨겨 자해를 하고 싶어 선택한 방법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였다. 얼굴 반쪽이 기이하게 부었고, 학교에도 멍이 시퍼렇게 든 채로 다녀야 했다. 상담사는 목과 얼굴이 끝나면 다음 단계가 있다고 했다. 자살이나고 물어보니 그건 아닌데 말해 줄 수 없다하였다. 나는 사실 그 다음 단계가 궁금하다...


​자해는 우습게도 '비자살적 자해'라고 불린다. 자살 의도 없이 자신의 신체에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해를 입히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관심구걸 이기도 하다.


​내가 원했던 반응이다. 우는 모습이 좋아 웃었다. 안도했다. 운다는 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병신 같은 년놈들이 이러고 있는 꼬라지가 우습고 재미있어 웃은 것도 있다. 확실히 못 그은 내가 용기 없는 병신같이 느껴진다. 난 자살도 못하는 병신이니깐 ... 나도 언젠가는 성공하겠지?생각을한다.


여간 ​내가 웃든 말든 신랑은 계속 운다. 아이처럼 무섭다고 계속 운다.


내 목에는 피가 흐르고, 신랑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른다.





한달 전 잘 참던 자해가 크게 터졌습니다.

지금은 흉터가 아물듯 마음도 아물었습니다.

저는 또 버텨야합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저는 사랑받고 싶거든요 저는 정말 사랑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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