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빠진 새들의 주차장

by 노란빛방울



알고 있는가. 고운 빛깔의 새들도 삶이 고단하면 스스로 제 깃털을 뽑아내어 날개가 앙상해진다는 것을.


​주차장에 스파크 한 대와 레이 한 대가 나란히 선 안에 들어선다. 하필 이 기막힌 타이밍이라니. 재수 없으려면 꼭 이렇다니까. 투덜거리며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짐을 챙긴다. 옆 차의 그녀도 내려 분주히 짐을 챙긴다. 이웃이지만 본체만체한 지는 꽤 되었다. 나는 이 뻘쭘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면, 그녀는 나를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느릿하게 움직이며 등만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내가 먼저 올라가 줄게.'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집으로 향한다. 내가 그녀보다 윗집에 산다는 사실이 이럴 때는 묘한 우월감을 준다. 현관문 너머로 그녀가 터벅터벅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어쩌다 이토록 불편한 이웃이 되었을까.


​처음의 그녀는 딸기 농장 주인처럼 상큼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었다. 우리 남편이 운영하는 정육점에 들러 고기도 사 가고, 총무인 남편이 고생 많다며 문 앞에 딸기 한 박스와 하얀 꽃잎 하나를 어여쁘게 올려두고 가던 천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의 깃털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날개에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그럼에도 그 날개로 두 딸을 품어내는 엄마였다.


​하루는 입이 근질거려 묻고 싶었다.

"무엇이 그리 불만이기에 저에게 이토록 쌀쌀맞은 겨울입니까? 층간소음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사과라도 하겠지만, 이유라도 말해줄 수 있잖아요."

나는 마치 새침한 여인의 밀당에 넘어간 남자처럼 그녀의 태도에 깊이 매몰되어 있었다.
​밤 10시만 되면 그 집은 불이 꺼진다. 새벽이 넘어야 잠드는 우리 집 때문에 시끄러웠던 걸까 싶어, 나는 까치발을 들고 살다 못해 발레리나가 될 지경이었다. 남편이 조심스레 물어도 보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만 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리고 나를 이토록 추리 탐정처럼 몰고 가는 것일까.


창밖 주방 너머로 잎을 다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가 비치던 어느 오후였다.
​타닥타닥. 거실에는 키보드 소리만 울린다. 모니터 화면에는 안경을 쓴 내 모습이 비친다. 헤드셋에서 흐르는 우아한 클래식, 커피 한 모금, 발밑에서 느껴지는 반려견 세 마리의 온기. 완벽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기며 글을 쓰던 그때, 이 평온에 금을 긋는 소음이 들려왔다.


​아랫집이었다.
​물건 던져지는 소리와 함께 그 집 남자의 고함이 내 주변을 감쌌다. 아래층 소리임에도 마치 위층에서 들리는 것처럼 내 머리 위를 짓눌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그녀였다. 비명에 가까운 절규였다. 맞은 걸까? 그녀는 처절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를 향한 것인지, 세상을 향한 것인지, 혹은 그녀가 믿는 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살려달라는 외침. 뒤이어 윽박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지나가자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네가 대출받았잖아! 이제 어쩔 거냐고!"
​아, '돈'. 그 대출금이 그녀의 날개 깃털을 뽑아버린 원흉이었구나.
​당장 내려가서 말려야 할까, 어찌해야 하나. 그녀를 구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이런 섣부른 행동이 누구나 숨기고 싶어 하는 그림자를 들추어 그녀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망설여졌다.


잠시 후, 그 집 남자의 세단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운다. 처절하게, 하염없이. 저러다 숨이 넘어가 쓰러질 듯이 운다.


​층만 다를 뿐, 그녀와 나는 같은 자세로 그 기괴하고 처절한 울음을 토해냈다.

"차라리 죽여! 나도 이렇게 살기 싫어! 누가 결혼하자고 했어? 이혼해, 당장 이혼하자고!"

과거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대사만 조금 다를 뿐, 상처에 무너져 흐느끼는 여자의 형상은 똑같았다. 연민도 동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한 동질감이었다.


​그녀도 그저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처럼 현실에 짓이겨져 날개털이 하나씩 뽑혀 나간 가여운 새. 거울 속 나의 날개를 본다. 이제야 겨우 새 깃털이 돋아나고 있다. 나 또한 그 앙상한 날개로 지켜야 할 것들을 품으며 살았다. 그녀는 소중한 두 딸을 그 뼈대만 남은 날개로 품고 있었을까.


​둘 다 날개가 앙상해서 서로를 품어주지 못했구나. 이 지독한 동질감에 마음이 무너진다. 불안이 나를 옥죄고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조차 소매로 닦아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못나 보인다.


​알고 있는가. 날개가 다 빠져버린 두 마리의 새가 있다. 날지도 못한 채 지친 표정으로 살아가는 새들. 그나마 새 깃털이 돋아나고 있는 내가, 그녀를 조금이라도 품어보려 한다.


예전 그녀가 선물했던 딸기 상자 위, 하얗게 웃고 있던 그 꽃송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