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제부를 떠나보낸 지 어엿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나는 장례식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신랑과 여동생 사이가 잠시 멀어진 틈에 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그녀는 세상이 떠나갈 듯 통곡했다.
제부도 처음 뵈었다. 사진 속 그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신랑과 아가씨는 부둥켜안고 서글프게 울었다.
남매는 부둥켜안고 눈물로 저리 화해를 한다.
세 시간을 달려온 강릉 바람은 눈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얼어붙을 것 같던 그 매서운 바람도, 무언가 뜨겁게 달궈진 것이 울렁이며... 토할 듯 올라오는 인간의 감정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그녀는 12월 25일, 우리 신혼집에 놀러 오고 싶어 했다.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들...
아빠는 여행 중이라는 거짓말을 순수하게 믿을 정도로 착한 그 어린 조카들에게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다며 말이다.
우리는 당연히 승낙했고, 그녀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었다. 오직 그뿐이었는데 일이 꼬여버렸다.
25일 당일에 신랑이 시간을 못 비우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알겠다며, 그럼 빠른 날이 언제냐고 다시 물었을 것이다.
신랑은 29일 월요일을 가리켰다. 바보같이, 그날은 우리 웨딩 촬영일인데 말이다.
신랑은 아차 싶어 다급히 아가씨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을 재조정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심연 속에 빠져버린 뒤였다.
그녀는 번복되는 일정에 화가 난 게 아니다.
어떻게든 자기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이 모든 흐름이 그녀를 숨 막히게 한 것이다.
"제가 연락해 볼게요."
나는 그녀에게 문자로 다가갔다.
그녀보다 내가 한참 어리다 보니 그녀는 나를 '새언니'라 부르지 않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이미 심연 속에서 온몸에 가시를 내세우고 있었다.
다가가면 금방이라도 손이 베일 것만 같았다.
꼭 나 같았다. 가족을 떠나보냈을 때의 나 같았다.
그 첫 감정, 첫 단계를 걷는 그녀가 가냘프고 안쓰러웠다.
당신의 감정을 이해한다며, 나도 사랑하는 이를 두 번이나 하늘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붉은 실로 이어진 배필을 떠나보낸 슬픔을 내가 이해한다고 했으니.
그녀는 더욱 가시를 세우며
"함부로 이해한다 하지 마세요"라고 선을 긋고 사라져 버렸다.
아... 처음에는 서글펐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보니 내 상처가 먼저 보였다.
그러다 다시 그녀의 흐느낌이 보였다.
'그게 아니에요... 미안해요, 날 좀 봐요 제발.'
나는 다시 연락을 남겼다.
"다친 마음을 내가 함부로 안다고 해서 상처받게 해 죄송해요."
나는 그렇게 하나의 감정을 배웠다.
그녀와의 오해가 풀리고 그녀의 마음이 다시 열리자
그녀는 25일, 우리 집 거실에서 산타클로스 모양의 케이크에 초를 꼽고 후~ 불고 갔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저 그 미소가 감사했다.
아이들을 위해 더 욱더 환히 웃음을 보여주었을 그녀...
그녀는 정말 강한 엄마였고, 조카들은 세상천지 모른 채 금방 내려 소복이 쌓인 하얀 눈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녀가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녀가 오늘도 행복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