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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몰입러 노랑 Apr 27. 2022

피지컬 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 관극 후기

망각의 혼란에서 그가 건져올린 건 아주 작은 기억의 조각 하나였지만

망각의 혼란에서 그가 건져올린 건 아주 작은 기억의 조각 하나였지만

더없이 치열했고 또 아름다웠다.

-노랑의 한줄평


피지컬 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 (~22.04.30)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배우, 사랑하는 극이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제작사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연극열전'과 '랑'이 그러하다.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린 '연극열전'을 보고 자연스럽게 표를 잡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극을 갔는데...

망각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내가 뭘 본 건가 싶은 깊은 충격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누군가가 기억을 잃어간다-라는 문장을 이미지로 상상해본다면? 나에게는 <멍한 당사자와 슬퍼하는 주변 사람들>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 극 속에서의 당사자인 톰은 절대로 마냥 멍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도 치열하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기억 하나하나에 더없이 충실하게 감정을 느끼고 소중히 한다. 케이크는 기쁘고 교복 재킷은 반갑다. 그래서 망각의 혼란이 격해졌을 때의 당혹스러운 톰의 표정이 더없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 표정. '피지컬 시어터'에 맞게 이 극의 많은 부분에서 대사는 마치 더미처럼, 그 공간에는 있긴 하지만 비어있지 않게 채워주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은 음악, 움직임, 그리고 표정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절대 느리지 않고 굉장한 몰입감을 준다. 마치 영상에서의 트랜지션처럼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가 타이밍을 탁탁 맞춰가면서 장면이 전환되면 굉장한 전율까지 느껴진다. '기억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라고 느껴졌던 톰은 어느 순간 제멋대로 뒤섞이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고 무언가를 아주 간절하게 찾고 있다. 통제를 벗어난 기억들과 잡고자 애쓰는 톰의 술래잡기는 그 땀방울까지도 너무 치열하고 아름다워서 이미 그때부터 나는 울고 있었다. 혼란이 팡 터진 뒤의 그 정적까지. 극장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배우도 밴드도 관객도 숨죽였던 그 순간 뒤에 찾아온 엔딩까지.


뜻 모를 눈물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 극장을 나선 뒤 문득 잔상처럼 톰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아름다웠던 기억들은 당시에는 너무 평범하게만 느껴진다. 애쓰지 않아도 영원할 것만 같고, 치열하게 그 기억을 찾으리라는 상상 자체를 하지 않는 아주 소소한 기억 조각들. 그 순간 나누었던 대사는 정확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아주 소중하게 자리 잡는 기억들.


'잊혀지지 않을 오늘의 기억 한 조각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연한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너무나 아름다웠던 극. 우리는 어쩌면 톰이 될 수도, 이자벨라가 될 수도, 소피가 될 수도, 마이크가 될 수도 있다. 

+ 또 한 번 보면서 더 깊게 과몰입하고 싶은데 표가 없다. 공연 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더 오래 하시면 배우님들 건강이 염려될 것 같기도. 모두 고기 많이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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