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일 : 22.10.03(밤)
이번이 마지막 시즌이니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꼭 보라는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 따라 급하게 예매한 뮤지컬 서편제. 티켓팅이 다 지난 후에 예매해서 자리는 좋지 않았지만 그걸 초월할 정도로 너무나 좋았고 감동적이었다. 소리꾼 아버지를 둔 남매의 인생 이야기가 굉장히 한국적인 무대에서 펼쳐진다. 아무래도 우리 소리가 작품의 큰 주제이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일이 많았는데 너무 강렬했다. 이렇게 제대로 들은 게 처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개인적으로 서편제는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방식을 보여주는 극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더 옳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진취적으로 떠났던 인생, 그리고 좌절에 슬퍼하지만 길을 바꾸지 않고 계속 나아갔던 인생. 그리고 두 인생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내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만나는 것. 마음은 같았지만 방식은 달랐던 두 인생이 시간이 흘러 만나 심청가에서 열리는 그 부분이 정말 압권이었고 감동적이었다. 결국은 두 사람이 함께 북 치며 소리하는 그 시간들이 좋았을 뿐인데, 길고 긴 시간과 길을 돌고 돌아서 다시 만나 그 마음을 깨닫는 그 모습이 마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가 아주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깨닫는 인생사가 겹쳤다.
무대 연출도 빼놓을 수 없는데 소품을 가득가득 채워놓은 스타일은 아니고 오히려 여백이 느껴지는데 그 여백조차 아름다운, 한국 수묵화가 생각나는 아름다운 무대였다. 특히 무대 위 돌아가는 원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통한 연출들이 참 잘 표현되어 있다고 느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모습이나 마지막 심청가에서 긴 인생을 풀어놓는 듯한 모습들. 특히 동호가 송화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길을 걷는 모습이 어린 시절 소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던 그 모습이 겹쳐져서 더 와닿았다.
더 옳다고 느끼는 무언가를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진취적인 동호의 모습은 어쩌면 익숙한 인생의 방식이기도 한데 나는 송화의 인생을 보며 너무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부당한 일에 슬퍼는 했지만 복수심에 불타지 않고, 같은 길에 계속 머무르나 치열하게 스스로를 계속 갈고 닦는, 수동적이진 않은 모습.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그녀의 노래 가사를 빗대어 생각해봐도 그녀의 인생은 '순응'보다는 '초월'에 가까웠다. 그 모든 일들에도 그렇게 많이 용서하고 많이 노력하고 그리운 것을 손에 억지로 쥐려 하지 않고 그저 소리만을 위해 노력하고 동생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 모든 후기의 전제는 현대의 인식에는 맞지 않는 일들이 극 중에 일어난다는 것. 이야기의 시대가 다르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난 그 소리꾼 아버지 유봉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