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산동 여행이 해안 도시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내륙이다.
산동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국이다. 인천에서 비행 항로 230마일로 김포-부산 간 거리보다도 짧다. 물리적으로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친근하다. 한국에 정착한 화교 대부분이 산동 출신으로 우리는 그들이 만든 중국 음식 즉, 산동 요리를 기본으로 한 음식 맛에 매우 익숙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가 산동 출신이요, 중국을 대표하는 맥주 ‘칭다오’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바이주(白酒)인 ‘연태고량주’의 고향도 산동이다.
제남은 이런 산동성의 성도이자 4천 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다. 도처에 맑고 아름다운 샘이 많아 천성(泉城, 샘물의 도시)이라 불린다. 위로는 중국인들이 ‘어머니 강’이라 부르는 황하가 흐르고, 아래로 남쪽에는 중국 오악 중 으뜸으로 꼽히는 태산이 우뚝 서 있다. 길이 5,464km인 황하는 양쯔강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며, 태산은 조선 중기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에도 등장하는 바로 그 산이다.
제남에서 동쪽으로 1시간 거리에는 중국 동서 교류의 중심이자 실크로드의 중추적인 통로였던 치박이 있다. 치박은 명청시대의 건축양식과 상업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특색 있는 여행지다. 지금까지의 산동 여행이 청도, 위해, 연태와 같은 해안 도시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내륙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제남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천성(泉城), 즉 샘물의 도시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맑고 아름다운 샘이 솟고, 그 물이 흘러 모여 거대한 호수를 이룬다. 따라서 제남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가며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봄이 짧아 5월이면 벌써 반소매 옷을 입어야 할 만큼 덥지만 유람선에 올라 수로를 따라가노라면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양옆으로 물오른 수양버들이 운치를 더한다.
유람선을 타기 전에 먼저 갈 곳은 천성광장이다. 대리석이 깔린 넓고 현대적인 광장은 시 중심부에 자리해 ‘제남의 응접실’이라 불린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국제예술광장’으로 지정했다. 광장의 명물은 높이 38m의 조형물과 연꽃 모양 분수대다. 샘과 물을 형상화한 파란색 조형물은 제남의 트레이드마크로 유명하고,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화려한 쇼를 선보이는 음악분수는 밤이 되면 색색의 조명과 함께 더욱 빛을 발한다. 제남 시민에게 이곳은 훌륭한 휴식공간이자 산책 코스다. 특히 여름밤 무더위를 쫓는 데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제남은 예부터 중경, 무한, 남경과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 Top 4에 드는 도시인만큼 시원한 분수는 한여름 더위를 잊게 만드는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천성광장 길 건너 맞은편에는 시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Parc66과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다. 자라, 유니클로, 스와로브스키처럼 익숙한 브랜드도 눈에 띄고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스타벅스 매장은 청춘남녀들로 북적인다. 천성광장 북쪽으로는 고풍스러운 구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길은 제남 최대의 자연호수인 대명호로 이어진다.
천성광장 일대는 ‘천하제일천 풍경구’로 조성되어 있다. 제남시의 중요한 관광 자원들을 모아 단지로 만든 곳이다. 표돌천 공원, 흑호천 공원, 대명호, 오룡담 공원 등이 포함되며 유람선은 운하를 따라 이 지역을 사각형으로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운영된다. 선착장은 총 10개로 어디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다. 흑호천에서 출발하면 서쪽 방향으로 천성광장과 표돌천을 차례로 지난 후 북쪽으로 올라가 오룡담을 지나고 대명호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와 출발점인 흑호천까지 100분이 걸린다.
이른 아침 흑호천 공원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배드민턴을 치거나 제기를 차는 사람, 커다란 물통 가득 샘물을 받아가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물가에 늘어진 수양버들은 아치 모양의 다리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제남 시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흑호천 공원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므로 시민과 관광객이 언제나 찾아와 샘물을 받아 마실 수 있다. 취수 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다. 3개의 샘에서 콸콸 솟아나오는 물은 수로를 따라 대명호로 흘러간다.
흑호천 공원에는 매일 아침 5시에 문을 여는 샘물 수영장도 있다. 지하에서 솟아나는 물의 온도가 늘 18℃를 유지하기 때문에 계절과 상관없이 수영을 즐길 수 있다니 놀랍다. 이용료는 무료다.
해방각은 흑호천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모택동의 인민해방군이 장개석 군대를 제남에서 몰아낸 것을 기념해 1978~1988년에 세운 건물로 제남시 10대 경관 중 하나다.
표돌천은 제남의 이름난 샘물 72개 중 으뜸으로 꼽힌다. 맑은 연못 한가운데 3개의 구멍에서 보글보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평균 수온은 18℃, 겨울에는 수면에 수증기가 가득하다. 청나라 때 강희제와 건륭제가 이곳을 둘러본 후 친필로 ‘천하제일천’이라 써서 내렸고 그때부터 표돌천이 천하제일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흑호천 유람선 센터를 출발한 배는 천성광장과 표돌천, 오룡담을 지나 높이 3m의 갑문 앞에 멈춰 선다. 드디어 도시 곳곳을 흐르던 샘물이 모여 형성된 천연호수 ‘대명호’에 다다른 것이다. 배가 멈춘 이유는 운하와 호수의 높낮이 차를 맞추기 위해 물의 양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 적당한 높이까지 배가 내려가면 수문이 열리면서 드넓은 호수가 눈앞에 나타난다. 표돌천, 천불산과 함께 제남 3대 명승지로 꼽히는 대명호는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還珠格格)> 덕분에 한층 유명해졌다. 청나라 문인들은 대명호를 일컬어 “사면이 연꽃이고 삼면이 버드나무로 덮였네. 절반은 도시요 절반은 호수로다”라며 감탄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연꽃이 가득 피어난 여름철에는 얼마나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대명호 남문 맞은편에 형성된 곡수정가는 명청시대에 형성된 옛 거리로 골목골목 사합원 양식의 건물이 눈에 띈다. 사합원은 사각형의 중정을 둘러싸고 사방에 건물이 배치된 중국 북방의 전통가옥 양식이다. 북경에 특히 사합원 주택이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져 희소 가치가 높다. 이 거리의 사합원 건물도 요즘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고가에 거래된단다.
곡수정가는 예부터 ‘집집마다 샘물이 흘러나오고 수양버들이 서 있다’고 전해오는데, 말 그대로 아름다운 천성의 품격과 여유 있는 일상의 풍경이 묻어난다. 한 골목으로 접어들자 눈앞에 놀랄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한가운데 인공호수가 떡 하니 들어섰고, 동네 사람들이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왕부지자(王府池子)라는 이름의 이 호수는 일종의 마을 공동 수영장이다. 수온이 연중 18℃로 일정해 일년 내내 이렇게 물놀이를, 그것도 공짜로 즐긴다고 한다.
이제 제남 구도심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부용가로 접어든다. 곡수정가와 평행으로 나란히 뻗은 부용가는 중국 여행에서 기대할 수 있는 온갖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먹자골목이다. 본래부터 먹자골목은 아니고 명청시대에 상업지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옛 거리를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아침부터 관광객이 모여들기 시작해 정오가 되기 전에 이미 거리를 꽉 메울 만큼 늘어나고 인기 맛집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생긴다. 국족(国足)이라는 브랜드의 취두부집도 인기 맛집 중 하나다. 두부를 발효시켜 바삭하게 튀긴 뒤 매콤한 소스를 뿌려주는데 선뜻 손이 안 가는 냄새와 달리 맛은 순하고 부드럽다. 과일을 설탕 시럽에 굴려 대나무 꼬치에 꽂은 새콤달콤한 중국 북방의 대표 간식 탕후루, 메뚜기·전갈과 같은 곤충 튀김, 한국식 김밥, 오징어구이, 아이스크림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먹거리가 있으니 취향대로 맛보자. 부용가의 한쪽은 제남 옛 거리와 연결되고 다른 한쪽은 Parc66과 쇼핑몰이 밀집한 현대적인 번화가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부용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실크로드의 발원지이자 고대부터 명청시대에 이르기까지 상업도시로 이름을 떨친 주촌, 자연풍경과 인문풍경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생생한 한 폭의 산수화를 보여주는 제산, 도자기와 유리공예가 발달한 박산까지, 생소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치박시 여행.
치박시에서 단 한 곳만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주촌고상성 풍경구일 것이다. 주촌은 중국 고대 실크로드 출발지 중 한 곳으로 예부터 실크의 고향 또는 천하제일촌이라 불려왔다. 천하제일촌이라는 명칭은 1750년 청나라 건륭제가 지어준 것이다.
주촌고상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따지에(大街)라 적힌 패루에서 시작한다. 명청시대에 번성했던 이 거리에는 살아 있는 고대 상업거리 건축박물관이라 할 만큼 많은 고건물이 남아 있다. 서울 인사동과 비슷하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주촌고상성에는 실제로 옛날에 우체국, 은행, 금은방, 환전소, 염색 재료 상점이었던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당시 주로 거래되던 품목은 비단, 면화, 도자기, 차, 토산품 등이었다.
돌길을 따라 걸으며 청나라 때 우체국으로 썼던 대청우국, 영미 담배공사(Site of British-American Tobacco) 옛터, 약국, 환전소, 미국 모빌 석유회사 사무실 등 19~20세기의 흔적을 더듬어 보자. 따지에가 끝나는 광장에는 ‘오늘은 세금 없는 날’이라는 뜻의 ‘금일무세비’가 서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알고 보니 옛날 리화시라는 인물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 주촌으로 돌아와 이곳을 중국 역사상 첫 보세구로 만들자 상인들이 모이면서 교역 중심지가 된 것이란다.
제산관광지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제문화를 주제로 조성된 휴양관광지다. 물론 등산이 중심이긴 하지만 캠핑, 물놀이, 역사 체험까지 가능하도록 종합적으로 개발 중이다. 이를테면 등산로 초입에 대장간, 술방, 도공방, 직물가게 등으로 이루어진 제민부락을 재현해 놓았는데, 대장간에서는 실제로 풀무를 차려놓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들고 술방에서는 53도 특산주를 생산한다. 특산물인 참깨 전병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해발 868m인 제산을 오르내리는 데는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출렁다리, 깎아지른 절벽, 기이한 동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225개의 아찔한 계단 등 버라이어티한 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 정상의 성벽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와 노나라의 경계가 되었던 곳이다.
석회동굴인 개원동굴은 강북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천장이 높아 활달한 기세를 느낄 수 있다. 송나라 때의 글씨, 그을음 자국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원이 남아 있으며 아름답고 다양한 종유석도 관찰할 수 있다.
치박시 박산구는 예부터 도자기와 유리공예가 발달한 지역이다. 유리공예전시관에서 입으로 불어 유리를 성형하는 모습과 수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고, 유리산업 역사와 유리공예 전시품도 관람할 수 있다. 과일, 꽃, 곤충을 디테일 하나까지 살려 실제와 유사하게 만든 장식품, 거실에 세워두고 싶은 아름다운 장식용 화병등 다양한 공예품을 만나보자. 팔찌나 목걸이와 같은 소품도 구매할 수 있다.
항공
인천에서 제남까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산동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1시간 소요.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통화와 환율
중국 위안화(CNY)를 사용한다. 1위안=175원(2016년 4월 20일 기준)
글 _ 이정화 사진 _ 한상무
취재협조 _ 산동성 여유국
: Yellow trip 카카오 스토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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