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llowballoon Jun 15. 2016

흑인 노예의 소울푸드에서 시작된
프라이드치킨

누구에게나 소울푸드(Soul Food)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Fried

Chicken

누구에게나 소울푸드(Soul Food)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지친 일상에 위로가 되는 음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맛,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기억…… 

그러나 소울푸드의 진실은 이처럼 아름답거나 감성적이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슬프다. 

미국 노예제 시절 흑인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 바로 소울푸드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드치킨에 담긴 슬픈 역사를 알아본다.


소울푸드를 아십니까?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호머 심슨은 “치킨은 어떤 종교와 문화, 민족도 금지시키지 않은 진정한 사랑과 화합의 음식”이라 말했다. 하지만 닭이 누구에게나 사랑과 평화의 음식은 아니었다. 특히 흑인들에게는 그러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우에하라 요시히로는 저서 《차별받은 식탁》에서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노예제 시절, 백인 농장주가 버린 재료들을 가져다 만들어 먹은 흑인 노예들의 음식이 소울푸드의 유래”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소울푸드는 고된 노동과 낮은 임금 속 흑인 노예들의 삶을 버티게 해줬던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프라이드치킨이다. 흑인 노예들이 먹던 음식이 소울푸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흑인의 공민권을 주장하며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였다. 미국의 흑인들이 자신들만의 음식의 독자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심하다가 ‘소울푸드’란 이름을 붙였고, 그 이후 흑인들의 문화에는 ‘소울’이란 단어가 붙는다.


노예들의 눈물로 튀긴 음식

소울푸드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프라이드치킨은 켄터키 노예들의 눈물로 튀긴 음식이었다. 노예제 시절 백인 농장주들은 닭을 오븐에 구워 살코기만 먹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발라먹기 힘든 날개와 다리, 목 등은 버려졌고 이는 노예들 차지였다. 오븐이 없던 노예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냥 먹자니 뼈가 많아 힘들었고, 그렇다고 닭을 구워낼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러다 고안해낸 것이 기름에 튀기는 것이었다. 튀긴 닭은 살이 적어도 먹음직스러웠고, 뼈째 바삭하게 먹을 수 있었으며, 지친 몸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고열량 음식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흑인들은 어떻게 튀김 조리법을 알게 됐을까? 사실 프라이드치킨은 좀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라이드치킨의

기원은 중세시대 지중해 유역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는 쇠솥에 다량의 식물성 혹은 동물성 기름을 붓고 닭을 튀기는 조리법이 일찍부터 전해 내려왔다. 그 조리법이 여러 유럽 국가로 전해지며 발달해 오다 닭튀김을 즐기던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달된 것이다.


풍부한 돼지기름이 만든 딥 프라이드 조리법

그러나 이전의 튀김 방식은 흑인들의 것과는 달랐다. 이전의 튀김 조리법은 재료가 한 쪽만 잠길 정도의 기름을 사용해서 닭을 뒤집어가며 익히는 팬 프라잉(Pan Frying)이었다. 그러던 것이 미국 남부에서 딥 프라잉(Deep Frying)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딥 프라잉의 발달은 양돈업과 관련이 깊다. 18~19세기 미국 남부는 양돈업이 성행했다. 당시 농업이 발달했던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를 이용해 면화와 땅콩, 옥수수를 재배했고, 그 결과 소에게 먹일 초원의 풀보다 돼지에게 먹일 사료가 풍부해져 부수적으로 양돈업이 발달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켄터키 주는 ‘돼지고기의 고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양돈업이 발달한 미국 남부는 어딜 가든 돼지기름이 풍부했다. 덕분에 프라이팬에 두르는 기름을 아껴가며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펄펄 끓는 넉넉한 기름에 재료를 푹 담아 고온에 순간적으로 튀기는 딥 프라잉 조리법이 발달한 것이다.

흑인 노예에게 허락된 유일한 단백질

프라이드치킨이 흑인 노예의 음식이 됐던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먹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단백질이 닭고기였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합법이었던 남북전쟁 이전,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들에게 닭은 사육, 매매, 조리가 허용된 유일한 동물이었다. 노예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재산이 없어 계속 하인으로 생활해야 했던 흑인들은 닭 이외에 다른 동물은 사육할 수 없었다. 소를 키우려면 풀을 베어다 먹일 초지가 있어야 하고 돼지를 키우려고 해도 사료로 쓸 도토리나 옥수수, 감자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당시 흑인들에게 닭은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자 자신들이 먹기 위해 요리할 수 있는 유일한 고기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흑인들은 정성을 다해서 닭고기를 튀겼고,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게 요리했다. 흑인들에게 프라이드치킨이 소울푸드가 된 또 다른 배경이다.


백발 치킨 할배의 등장

역설적으로 당시 백인은 프라이드치킨이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군침을 삼키며 참아야 했다. 흑인들이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전까지 백인들은 체면 때문에 프라이드치킨을 대놓고 먹기가 쉽지 않았다. 백인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프라이드치킨을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남짓이다. 이런 프라이드치킨을 백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지금과 같이 즐길 수 있게 된 데는 백발 치킨 할배의 등장이 한몫을 했다. 1890년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커널 샌더스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당시 유행하던 딥 프라잉 조리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밀가루와 여러 향신료 가루를 섞어 만든 튀김가루, 거기에 압력솥을 이용한 조리시간 단축 방법 등을 개발해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형태의 프라이드치킨 조리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조리법이 보급되면서 닭튀김은 백인 농장주의 식탁에도 오르기 시작했고, 이를 모태로 한 프랜차이즈 점포가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 80여 개국으로 퍼져나가면서 흑인 노예의 ‘소울푸드’는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현재 대부분의 치킨집에서 치킨을 튀길 때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베이크 파우더’ 또한 그 백발 할배의 발명품이다.


때로는 인종차별의 음식으로

간혹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조롱을 할 때 프라이드치킨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어 왔다. 1970~1980년대에는 이에 반감을 품은 흑인들이 저항의 의미로 타 인종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선 프라이드치킨을 먹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근래에는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를 두고 퍼지 조엘러와 세르지오 가르시아가 각각 “마스터즈 대회 챔피언 디너에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해서는 안된다” “매일 밤 초대해서 프라이드치킨을 먹이겠다”는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가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전 세계 치맥의 수도,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만큼 ‘치킨’을 즐기는 이들이 또 있을까? 한 은행계 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3만 개 가까이 되며, 비프랜차이즈를 합치면 5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천 명당 하나 꼴이다. 골목마다 들어찬 대한민국의 치킨집 전화벨은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울려 퍼진다. 최근엔 한국식 치킨 문화가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즐기고 싶은 음주 문화 중 하나가 치맥이 됐으며, 한국의 치킨 문화를 접한 외국인들은 종류의 다양함과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에 반했다고 이야기한다. 치맥은 이제 외국인에게 떡볶이나 불고기처럼 한식의 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놀라운 것은 한국의 치킨 기술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고장인 미국으로 역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에서 ‘Fried Chicken’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Korean Fried Chicken’이 뜨며, 해외 언론에서도 진기하고도 특별한 한국의 치킨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트리뷴》에 한국식 양념치킨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으며, 21세기식 신개념 요리책 《모더니스트 퀴진》의 뉴스레터에도 한국식 양념치킨 만드는 법이 소개됐다. 이에 맞춰 한국의 대형 치킨 브랜드들도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 한국식 치킨과 치맥 문화를 알리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엔 한국에서 시작된 치맥 축제가 해외로 수출돼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프라이드치킨의 시작이 어떠하든 현재 전 세계 치킨의 수도는 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맥은 한식?

그렇다면 튀긴 닭에 생맥주를 곁들이는 음식 문화는 과연 한국에만 있는 것일까? 치맥을 한식으로 봐도 되는 것일까? 사실 치맥 문화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다. 1970년대 명동에 전기구이 통닭이 등장했을 때부터 ‘통닭에 맥주’는 있었다. 다만 ‘치맥’이라 따로 이름 붙여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1980년대 후반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한국의 치맥은 더욱 발전하게 됐다. 저마다 맥주에 딱 어울리는 닭튀김을 개발하다 보니 궁합이 더욱 잘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프라이드치킨을 전통 한식이라 할 수도 없고 ‘한국식 치킨=한식’이라고 말하기에도 무리가 있지만 어쨌거나 한국의 치킨 문화가 세계에 유례없는 독특한 음식 문화인 것은

사실이다.


글 _ 이현주(여행기자)

                                                        



: Yellow trip 카카오 스토리

https://story.kakao.com/ch/yellowtrip


작가의 이전글 Happy 100th birthday, 미국 국립공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