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의 낭만

낭만일기

by 노랑돌고래

낭만일기 by 노랑돌고래 | 5.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의 낭만

2024.08.01



낭만이 무소유, 안빈낙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삘이 찌르르 왔을 때 공항으로 달려가 일등석 티켓을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빈 손으로 가도 필요한 것은 돈으로 사면 되는,

경제의 자유


낭만을 만끽하려면 돈 많은 김삿갓이어야 한다.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성취감을 채운다는 우아한 이유여야 한다.


지금의 나는 이리저리 눈치 보고 계산해가며 한달에 한번의 연차를 주섬주섬 챙기고 호기롭게 일정을 올려놓고도 일주일 통으로 휴가를 써도 될까 소심하게 고민하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제적 부자유 상태이다.


아니면, 내가 낭만을 꿈 꿀 수 있는 이유는 운신의 폭이 좁은 소시민이어서 그런 걸까?

돈이 넘치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게 되면 낭만의 색이 바래게 될까?


일론 머스크만큼 돈이 많다면 나는 우주 여행을 꿈이 아닌 스케줄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알래스카의 오로라를 버킷 리스트에 넣는 대신 '굳이 추운 곳에 왜 가지?'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아, 그래.

나는 부족한 게 많고 거기서 세속적인 욕망을 감추지 않아서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내 멋대로 상상하고 부풀리면서 '낭만'이라는 틀 속에 넣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결핍 상태에 살아야 내가 평생 지키고 싶은 낭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유명한 예술가들처럼 나는 가난(사실 빈곤하지는 않으니까 이건 경솔한 발언이다.)을 낭만으로 여기고 부유에게 '불행하여라!' 외치며 살게 될까.


기각합니다.

나는 오늘 퇴근 길에 로또를 살 것이다.

단 돈 5천원에 희망을 가지고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까지 즐거운 상상을 할 것이다.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담긴 로또 한장이 나에게는 낭만으로 가는 티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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