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허락하는 낭만, 장마

낭만일기

by 노랑돌고래

낭만일기 by 노랑돌고래 | 3. 날씨가 허락하는 낭만, 장마

2024.07.23



전 주인이 고친 집은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다.

내 방은 베란다를 터서 넓고, 북향 치고 밝은 편이지만 단열 공사가 시원찮아서 겨울에는 코가 시릴 정도로 춥기때문에 가끔은 커다란 통창을 반으로 막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통창이 빛을 발하는 날도 있으니 바로 비 내리는 날.

그 중 폭우가 쏟아질 때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볼 때도 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물이나 비가 세상과의 단절 요소로 자주 등장하는데,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그 의미를 몸소 실감하게 된다.


집 앞 놀이터에서 울려퍼지던 아이들의 목소리 대신 쏟아지는 빗소리는 ASMR처럼 기분 좋게 울리고 주륵주륵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줄기도 한폭의 그림까지는 아니지만 '비멍'의 시간을 갖기 좋다.


사실 나는 비가 오는 날에는 '통창이 있는 큰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잔 하면서 책을 읽고 싶다.'는 낭만 욕망이 있다.

실상은 외출한 김에 비가 많이 와서 우연히 맞아떨어진 게 아닌, 집에 있다가 나의 의지로 그런 창문 큰 카페에 찾아간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편안하지만 추레하지 않은 원마일룩을 갖추고, 너무 작지 않고 편하게 오래 머물 수 있는 카페를 찾고, 혹시 누가 표지를 봐도 괜찮은 책을 골라서 허세도 좀 챙기고 하는 과정이 귀찮기도 하지만 집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카푸치노는 아니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 들고 통창 옆의 침대에서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빗소리가 다른 소음까지 흡수해서 그런지 집안의 생활 소음까지 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시간 안에서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평소보다 집중하게 된다.

비록 그것이 유튜브로 쇼츠를 보는 시시한 시간 때우기더라도 말이다.


점점 동남아화 되어가는 기후때문에 이제 장마라는 말은 사라지고 우기가 대신 자리잡게 될 거라고도 한다.

한때는 나에게 고요한 안정을 주었던 이 비가 사회의 재난이 되지 않길... 내 인생에서도 두려움이 아니라 항상 낭만으로 머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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