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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May 30. 2019

방탄소년단!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2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사십 대 중년의 아줌마를 구원하는가 2.


3.

올해 초.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된 감정이 있다. 


2019년 첫날인 1월 1일. 부모님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점심과 후식까지 다 끝낸 후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고무장갑도 안 끼고 덜그덕 거리며 설거지를 하던 중, 갑자기 내 뱃속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예고도 없이 훅 올라와 어퍼컷을 날렸다. 정통으로 한 방 맞은 난 바로 수돗물을 잠그고, 두 손으로 싱크대 끝을 붙잡으며 몸을 지탱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감정은 이렇게 말했다. 


- 아! 기어코 2019년은 시작됐고, 난 또 1년을 살아내야 하는구나. 저 인간(남편)을 견뎌내야 하고, 저 아이(미루)를 견뎌내야 하고, 나를 견뎌내야 하는구나. 


눈물이 내 눈 끝에 맺혔다. 이 눈물은 뭐지? 이 감정은 뭐지? 엄청난 무게로 날 짓누르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른 채 그렇게 싱크대에 기대어 149.7 센티미터의 내 작은 몸을 지탱했다. 다행히 본 사람은 없었고, 혹여 엄마가 볼까 겁이 나 설거지를 끝내지도 않은 채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을 흐느낀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깊은 한숨과 함께 튀어나온 말은 이거였다. 

사는 게 지겹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스스로 내뱉으면서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마흔일곱이 된 지금에서야 느끼는 이 감정. 어쩌면 다른 사람에 비해 한참 늦게 알게 됐을지도 모를 이 감정. 이걸 ‘감정’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이 감정. 이게 내가 올해 초 처음 알게 된 ‘사는 게 지겹다’란 감정이다.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 힘듦이 ‘지겹다’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할까?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지겹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 밤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아침이 온다. 0.1초의 오차도 없이 시곗바늘의 초침은 일정하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돈다. 지구는 살짝 틀어져 있고 하루 한 번 자전을 하며 365일 동안 공전을 한다. 꿈쩍도 않고 변하지 않는 이 모든 불변의 법칙들이 쌓여 하루가 간다. 이 사실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날 질리게 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 뉴튼의 법칙, 남편의 버릇과 성격, 자라나는 아이, 이 세상 모든 불변의 법칙들에 숨이 막히고 그냥 속수무책 ‘살아야만’ 하는 내가 불쌍하다. 존재 자체의 지겨움이다. 생각해 보라. 백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여태껏 살아온 것도 모자라 앞으로 살아온 만큼을 더 살아야 한다니, 얼마나 지겨운가! 국어사전에서 ‘지겹다’의 정의를 찾아보니 ‘넌더리가 날 정도로 지루하고 싫다’로 되어 있었다. 지겨운 건 두 개의 감정이 합쳐진 거구나. 게다가 넌더리까지 난다니, 지겹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이었구나.


올해 초 알게 된 이 감정은 그동안 약하게 오고 가고를 반복했다. 평소 맨탈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였기에 순간의 우울은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람이니까, 인생이니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하지만 어린이날 연휴를 기점으로 꼴좋게 난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세상에, 삶이 이렇게 지긋지긋했었단 말인가? 


이 지겨움의 근원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한국이 답답해서일까? 돈이 많았다면? 유럽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았다면? 뉴욕에 계속 남아 브로드웨이 무대를 디자인했다면? 혼자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았다면? 부모님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원한 모든 것을 이룬 후 딴생각할 겨를 없이 지독히 바빴다면?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what if’의 시나리오들. 상황이 달랐다면 지금처럼 지겹지 않고 룰루랄라 즐겁게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내 대답은 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존재의 지겨움은 스멀스멀 기필코 찾아와 내 인생에 노크를 했을 거다. 우울의 요소들은 바퀴벌레처럼 어느 환경에서나 잠복해 있는 법이니까. 난 스스로 답을 내린다. 언젠가 올 것이 이제야 왔다고. 그나마 늦게 찾아온 걸 감사해야 한다고. 



4.

우울, 무기력, 지겨움, 피곤함 등, 삶의 지속성을 방해하는 이따위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이 감정들을 그냥 너도 나의 일부분이니 오냐오냐 껴안아줘야 할까, 아니면 가라 가라 멀리 보내려고 발악을 해야 할까? 


현재 날 잡아주는 건 우주가 내려준 이 방탄소년단이다. 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무심코 해버린 한 번의 클릭으로 인해 방탄의 세계에 입덕한 난 그들이 내미는 모든 컨텐츠를 부여잡고 버티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의 한계를 알고 최대한 즐기려는 그들에게서, (너무나 당연한 공식이겠지만) 완벽한 무대와 음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에게서, 화려함 뒤의 허무함을 알고 일상의 소소함을 아끼고 겸손을 추구하는 그들에게서, 스스로 ‘소년’이라 부르는 7명이 마치 가족같이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모습에서, 석진이의 무한 긍정과 자기애, 자존심을 내려놓는 행동과 ‘너의 수고는 너만 알면 돼’라는 자신감에서, 그가 하는 아재 개그와 귀여운 손키스에서, 난 이상하리만치 엄청난 위로와 동기부여를 받는다. 그들의 무한한 세계관과 매력은 파도 파도 끝이 없고, 난 밤새도록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밖으로 세려는 정신줄을 붙잡는다. 국위 선양하는 글로벌 슈퍼스타이기 전에 방탄소년단은 대한민국 망원동의 쬐그만 40대 중반의 아줌마를 삶의 지겨움으로부터 구원하는 작은 영웅인 것이다. 


하지만 안다. 이들이 날 진정으로 구해줄 수 없다는 걸. 어쨌든 이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니까. 한 번 사랑을 알면 그걸 잊지 못하듯, 한 번 알아버린 이 우울과 무기력, 지겨움은 앞으로 불쑥불쑥 나타나 날 괴롭힐 것이다. 그때마다 난 방탄에게 구해달라 손을 뻗어야 할까? 그때마다 난 새로운 방탄을 찾아야 할까?


여전히 난 허공에 대고 save me를 외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날 구원해줄 사람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마치 오지 않는 ‘고도’씨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테라공이 되어 계속 외칠 거다.


그 손을 내밀어 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그리고 기다릴 거다. 바람 부는 날 드넓은 벌판에서 혼자 춤을 추면서. 결국 난 날 기다리고 있다. 날 구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다. (그래도 방탄, 오래 있어줘...)


아! 외로운 인간이여. 이 지겨운 삶을 견디는 모든 인간들에게 경배를.



#방탄소년단

#BTS

#외로운인간

#그래도이렇게글을썼으니좀벗어나는가

#모든삶이짠하다

#얘네는군대가면안돼

#석진이가제일먼저가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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