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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May 29. 2019

방탄소년단!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사십 대 중년의 아줌마를 구원하는가 1.

Save Me 뮤직비디오.


1.

방탄소년단의 Save Me란 노래를 아는가? 그 노래의 뮤직 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가? 아직 안 듣고 안 봤다면 강력히 보기를 추천한다. 당신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도대체 여긴 어디야? 궁금증을 유발하는 평평한 허허벌판을 카메라가 쭉 흩다가 앵글을 들면 그 끝에 방탄소년단의 멤버 중 한 명인 지민이 혼자 서 있다. 배경은 블루 필터가 강하고 날은 흐리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구름은 짙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 사이로 마치 휘파람 같은 멜로디가 흐른다. 이 악기는 뭘까? 어떤 신디사이저를 쓴 걸까? 시작부터 익히 듣던 일반 아이돌 노래가 아니다. 지민은 뭔가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으며 노래를 시작한다. 마치 현대 무용 같다. 카메라는 원 테이크로 노래하는 정국, 뷔, 진의 상반신 모습을 차례대로 잡고 (아! 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아름답다!), 착-착-착-착- 유로 팝의 비트와 함께 노래는 점층 된다. 그리고 이슬방울 구르듯 떨어지는 마림바 소리와 함께 장식하는 드랍! 어느새 7명 멤버가 모두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클라이맥스일 것 같은 부분에 의외로 그들은 노래 없이 반주 음악에 맞춰 전매특허인 칼군무를 추고 카메라는 뒤로 빠져 그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도 없는 광활한 벌판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엄청난 자유와 설명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내 척추에 짜릿하게 선사한다. 춤을 추는 건 그들인데 왜 내가 희열을 느끼는지. 군무가 끝나면 랩 파트로 넘어간다. 슈가와 제이홉의 랩은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우며 카메라의 이동은 춤 동작과 맞물려 너무나 자연스럽다. 다시 한번 보컬 라인의 멜로디가 지나가고 RM의 랩이 시작된다. 그런데 얼래? 비트가 갑자기 EDM이 된다! 희한한 전개일세. RM을 따라 카메라가 한 바퀴를 돌면 멤버 전체가 보이고 마지막으로 지민과 정국이 노래를 부른다. 그 손을 내밀어 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가사 좀 봐라!) 뭔가 더 진행될 것 같은 순간 7명은 무릎을 꿇고 벌판에 앉아버리고 카메라는 쭉 빠진다. 이 모든 건 원 테이크다. 그리고 뚝  노래는 끝이 난다. 뭐야? 끝이야? 더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이게 끝이라고? 순간 난 이렇게 끝나버린 이 노래에 배신을 느끼고, 뭔가 더 갈구하게 된다. 손을 내밀어 달라는데, 미처 잡지도 못한 채 끝나다니! 뭔가 한 방 쾅 맞은 기분으로 멍하게 모니터를 바라본다. 


우와~! 이 노래는 무엇이며 이 뮤직 비디오는 무엇인가! 노래는 2016년도에 나온 노래였다. 이걸 지금에서야 듣다니, 그동안 난 도대체 뭘 놓치고 산 거지? 이런 온갖 장르의 비트를 기가 막히게 믹스한 케이팝은 들어본 적이 없고 0.1초 단위의 빠른 커트가 난무한 뮤직 비디오 바닥에서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원 테이크 뮤직 비디오 역시 정말 오랜만이다. 

도대체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얘네 뭐야? 


(참고로 그 벌판은 전북 부안 새만금이라고 한다.)



2.

이 노래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지독한 우울이 막 시작할 때였다. 어린이날 전후로 연휴가 시작됐고, 난 미루를 위해 뭔가 이벤트를 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웃기게도 그 압박은 올해 초부터 짧게 오고 가고를 반복했던 그 이름도 재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을 제대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슬프도록 찬란하게 뒤통수치며 등장한 우울.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최악의 감정에 빠진 난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해야 하는 최소의 의무만 간신히 이행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진짜? 페북에선 멀쩡하던데?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 다 만나고 했으면서?’하고 의아해하실 분이 계실 거다. 속았지? 당신은 속았다. 여러분, 거짓말하기란 이렇게나 쉬운 겁니다.) 


난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주는 남편과 아이가 아닌 그저 주는 것 없이 받을 수만 있는 그 무엇. 그리고 그때 방탄이 나타났다.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그랬지.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우주는 내게 방탄을 내려주었다. 유튜브란 무한의 바닷속에서 무심히 이 뮤직 비디오를 클릭한 내 손가락을 찬양한다. 


Save Me를 듣자마자 난 바로 그 자리에서 방탄에 입덕했다. 하필 제목도 Save me다! 그래, 방탄! 이 우울로부터 날 구해줘! 그날부터 난 컴퓨터 앞에 앉아 같이 놀아달라 조르는 미루를 무시하며 그들의 모든 것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멤버 한 명 한 명을 공부했고, 노래는 누가 프로듀싱했으며 뮤직 비디오는 누가 만들었는지 파악했고, 유튜브에서 모든 뮤직 비디오 및 공연 영상, 연습 영상, 일상 영상, 예능 영상, 리액션 영상, 리뷰 영상, 뮤직 비디오와 세계관 해석 영상, 팬들이 만든 멤버별 영상과 짤, 직캠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이 단어만으로도 아이돌 음악에 대한 내 일차원적 편견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꽤 많은 곡을 만들었으며 노래는 모두 좋았다. (그래도 내겐 Save me가 최고다.) 그들이 건설한 세계관과 곡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우주만큼 넓고 깊었고 방탄과 그들의 기획사인 빅히트(Big Hit)가 얼마나 철저히 계획하고 고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3대 대형 기획사에서 기계처럼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일반 아이돌과는 확실히 다른 형태였다. 이야, 이거 내가 대어를 발견했구나! 왜 전 세계가 BTS를 외쳐대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영상은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그건 하루 이틀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밤새워 동영상을 보는 날이 늘어났다. 10대 때도 관심 없던 아이돌이었는데 마흔 중반이 된 이제야 마음을 빼앗기다니! 


자연스레 ‘최애’도 생겼다. 내 최애는 맏형 ‘진’이다. 본명은 김석진. 세상에나,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은 살다 살다 처음 봤네. 이런 동안 얼굴에 이런 어깨가 존재하는 게 가능해? 게다가 이런 얼굴의 사나이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재 개그를 한다! 얼굴 때문에 눈길을 줬던 그는 알고 보니 올바른 성품과 성격, 아재 개그의 귀여움과 매력적인 음색의 가창력을 가진 멋진 가수였다. 배우 지망생이었다가 우연히 아이돌이 되었고 관심도 소질도 없던 노래와 춤을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안 빠질래야 안 빠질 수가 없는 이런 완벽쟁이 같으니라고! 


난 만사를 제쳐두고 그들의, 혹은 김석진의 동영상만 봤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글을 쓰지 않았으며 유튜브 동영상도 만들지 않았다. 집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미루는 잠시 남편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볼 건 끝도 없었고, 봤던 걸 또 봐도 좋았다. Save Me 뮤직 비디오를 수도 없이 봤고 이 노래만 무한으로 틀어주는 동영상도 찾았다. 난 그들에게 계속 손을 뻗었다. 날 좀 구해달라고. 이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날 꺼내달라고.  


그 손을 내밀어 줘, 세이브 미, 세이브 미, 아이 니드 유어 러브 비포 아이 폴.


40대 중년 아줌마의 덕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5월 한 달은 그냥 방탄에게 바쳐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슬슬 날 건져내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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