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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Sep 03. 2020

2W 매거진 3호 기고글: '남편이 시인이야?'

여성들을 위한 2W 매거진 3호 '여자, 돈을 말하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지난 1호에 이어 이번에도 제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제목하야 '남편이 시인이야?' ㅎㅎㅎㅎㅎ 예, 제 얘깁니다. 제 남편 카밀은 시인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시인이어서 나쁠 거 하나도 없습니다. 돌아오는 10월 17일에 네덜란드에서 그의 시집이 출간됩니다.   


https://blog.naver.com/2yjyj/222077035309


리디북스,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등에서 정가 천원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아, 이북입니다. 


아래는 제가 기고한 글입니다.  


------------------ 

'남편이 시인이야?'


-  이야~ 너! 진짜 오랜만이다! 

-  우와~ 이게 몇 년 만이냐! 거의 몇십 년 만인 것 같네. 

-  어떻게 지내? 

-  나야 뭐, 잘 지내지. 


(중간 생략) 


-  아, 그렇구나 ... 그러면 ... 이런 거 바로 물어봐도 되나? 남편은 무슨 일을 해? 

-  내 남편? 하하하하 글 써. 

-  글? 

-  응. 주로 시. 

-  시? 

-  응. 

-  어머, 시인이셔? 

-  응. 

-  아... 

-  하하하! 뭐야? ‘갑분싸’야? 

-  아니, 뭐 ... 

-  에이, 뭘 그렇게 지긋이 쳐다봐? 

-  하하, 그게 아니고 ... 

-  (갑자기 끼어든 남자 동창) 야, 너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거잖아. 

-  (옆에서 거드는 다른 남자 동창) 시인이라고? 네가 고생하겠네. 그럼, 어떻게, 밥은 먹고 다니냐? 

-  네가 뭐 송강호야? 왜? 못 먹고 살 것 같아? 남편이 글쟁이라서? 

-  원래 그렇잖아. 글 써서 어떻게 돈을 벌어? 

- 뭐... 그건 그렇지. 그래도 잘만 먹는데. 고기반찬도 먹는데.

- 그럼 등단은 했어? 책은 낸 거야?

- 요즘 출판 시장이 너무 어려워서 ... 소설이랑 다른 몇 권 독립 출판을 하긴 했는데 ... 그래도 이번 가을에 시집 하나 정식으로 출간해.

- 쓰읍~ 시집만 가지고 되겠어? 소설도 어려운데. 요즘 사람들 시도 잘 안 읽잖아. 이젠 실용서를 써야 해. 자기 계발서 같은 거. 그래야 좀 팔리더라고.

- 그런데 뭐, 시가 더 좋다는데 어쩌겠어.

- 그렇게 고집 피워서는 안 될 텐데...

- 아이고, 그렇게 잘 아시면 당신이 써보시던가~ 넌 책이라도 읽긴 읽냐?

- 카카카카카카 그럴 시간이 어딨어.

- (여자 동창이 조심스럽게) 그럼 벌이는 어떻게 해?

- 남편이 번역해. 그걸로 돈 벌지. 먹고 살아야 하니까.

- (다시 남자 동창) 번역? 그거 가지고 돼?

- 뭐 한 달 벌이는 돼. 여기저기 클라이언트들이 많더라고.

- 그래도 번역만으로는 안 될 텐데...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모아. 넌 안 벌어?

- 전에는 가르치기도 하고 번역도 하고 해서 돈 벌었는데, 요즘은...

- (다른 여자 동창) 야, 너도 벌어야지. 너 그림 그리잖아. 그거 안 팔아?

- 그러게, 나도 빨리 벌어야 하는데....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이것저것 해보는데, 이게 잘 안 터지네.

- (다른 남자 동창) 야, 가면 갈수록 나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란 거 너도 알잖아. 네 남편 혼자 버는 것만으로는 안 돼. 넌 걱정 안 되냐?

- 그게 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냐? 어쨌든 많이 버나 적게 버나 돈은 항상 모자란 거잖아, 안 그래? 금수저가 아닌 이상 뭘 어떻게 해도 걱정인 거지. 넌 어떤데?

- 사실 뭐... 나도 그냥 먹고 살 만큼 버는 거지. 그런데 왜 이리 안 모이냐? 나름대로 적금 붓고 하는데... 안 모아져. 곧 아파트 재계약인데... 하아... 올려 달라고 하면 어쩌지? 빨리 집 사고 싶다. 그런데 넌 나보다 더 답이 없다. 너 주택 청약이니 재테크니, 이런 거 신경 안 쓰지? 너도 그러면 안 돼. 시인하고 결혼했으면 네가 좀 빠릿빠릿해야 하잖아.

- 시인이 어때서? 그리고, 시인 마누라는 꼭 그래야 해?

- 에이, 그렇잖아...

- 그렇긴 뭘 그래, 이 사람아! 시인 남편 좋아! 순수하고, 나 엄청 사랑해 주고, 아이한테도 최고의 아빠고, 난 행복해! 댁이나 잘하셔요~

- 야, 그게 사랑만으로 되냐? 사랑... 좋지... 그래도 그게 돈이 있어야 오래 간다고요, 이 답 없는 아줌마야! 쩝, 하기야 돈 많이 벌어다 줘도... 요즘 자식 녀석들은 친구들이랑 놀기 바빠서 날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더라고. 마누란 드라마에 빠져 살고.

- 먹고사는 건 그냥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끄시고, 그렇게 걱정되면 오늘 내 회비는 당신이 대신 내주던가! 가난한 시인 남편 둔 나 좀 도와주라.

- 알았어, 알았어! 까짓거! 오늘 회비 얼마야?인당 삼 만원? 그래! 오늘 당신 회비는 내가 낸다! 대신, 나중에 시집 나오면 하나 줘. 

- 에이~ 그건 가난한 예술가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지!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데, 당신이 사줘야지! 배포 크신 분이 왜 이러실까? 

- 알았어, 알았어! 오늘 회비 내가 내고, 덤으로 나중에 시집 나오면 그거 내가 10권 산다! 오늘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말해, 알았지! 자, 건배! 

- 건배! 나도 열심히 돈 벌어서 다음엔 내가 내마! - 약속했다! 


(중간 생략) 


- 오늘 동창 모임은 어땠어, 자기야?

- 응. 재밌었어. 한 친구가 내 회비 대신 내줬어.

- 왜?

- 당신 때문에.

- 나 때문에? 왜?

- 당신이 시인이라서.

- ... 그게 뭔 소리야?

- 당신이 당신 시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대신 내겠대. 카카카카카카

- 뭐? 당신 친구 웃기네.

- 그 친구가 내 걱정 하더라. 시인 아내니까 힘들겠다며.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보지? 난 아닌데. 그래도 당신 덕분에 나 공짜로 술 얻어먹었네. 앞으로 자주 써먹어야겠어. 

-  하하~ 그래. 시인 남편 많이 우려먹어. 그래도 걱정해 주는 친구 있는 게 어디야. 

-  오늘은 어땠어? 글 좀 썼어? 

-  아니, 마감 때문에 계속 번역만 했어. 글 쓸 시간이 없네. 

-  싫지? 

-  당연히 싫지. 그래도 어쩌겠어. 먹고살려면 싫어도 해야지. 

-  미안해. 

-  뭐가? 

-  내가 안 벌어서. 

-  미안하면 빨리 돈 벌어. 자기도 번역하면 되잖아. 

-  하아 ... 번역은 정말 싫은데 ... 

-  난 뭐 좋아서 하나? 

-  알아. 당신 번역 싫어하는 거. 

-  알면 좀 어떻게 안 될까? 

-  알았어, 알았어 ... 나도 노력하고 있어 ... 그냥 있는 거 아니잖아. 하아...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네 ... 

-  몰라, 몰라. 아이 자지? 그럼 우리 뭐 좀 볼까? 

-  넷플릭스나 볼까? 그러면 ... 자기야, 나 새우깡 사주라. 새우깡 먹으면서 볼래. 

- 새우깡?알았어. 편의점 갔다 올게. 그거면 돼? 마실 건?

- 괜찮아. 그거면 돼.

- 알았어. 난 맥주나 한 캔 사야겠다. 갔다 올게. (나간다)

- (친구에게 톡을 보낸다) ‘잘 들어갔어? 반가웠고 덕분에 잘 먹었다. 고맙다. 건강 잘 챙기고 다음에 또 보자구.’ (바로 답장이 온다) ‘나도 반가웠어. 괜히 시인 남편이 어쩌고 오지랖 펴서 미안하다. 나도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닌 데. 하하하’, ‘카카카카 뭐 다 그런 거지. 남편이 걱정해 주는 친구 있어서 좋겠다고 하네. 돈 걱정은 내일 할란다. 잘 자라!' 자기 왔어? 어, 꼬깔콘도 사 왔네. 히히~ 컵 가지고 올게, 자긴 컴퓨터 준비해 줘. 전에 보던 거 계속 볼 거지? 

- 응. 근데 자기한테 톡 온 거 같은데.

- 괜찮아. 나중에 봐도 돼. 컵 가지고 올게. 


매일 이러고 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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