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시시껄렁할수록 심오한 여행의 잡설 in The Netherlands: 인간이란 무엇인가 - 20/11/03
1. 이 글은 누굴 원망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쓰는 이기적이고도 매우 날것의 글임을, 또 글에 비속어가 나온다는 걸 미리 알립니다. 비속어가 불편하거나 세련된 글 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2.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별의별 비극을 바로 옆에서 많이 봐왔다. 그래서 어떤 비극을 접할 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리 마음에 실드를 치는 과정이 어느 정도 훈련되어 있다. 인터넷 포탈 뉴스에 달리는 잔인하고도 모질디 모진 댓글/악플들을 볼 때도 이것이 인터넷의 생리이지, 하며 건너뛰곤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좀 어렵다. 가을 타나? 환절기 바람에 마음이 움츠려드나? 왜 당최 남 얘기 같은 게 없지? 일상 곳곳에 곰팡이처럼 피어있는 비극과 그 비극을 대하는 인간의 잔인함을 볼 때마다 며칠씩 온몸이 시리다. 그리고 질문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작년에 대히트를 친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며칠 전, 내 마음을 동요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의연하게 넘기지 못하고 찌질하게 그 잔상을 붙잡고 있다. 주책바가지 아줌마 같으니라고.
3. 사건 1은, 놀랍게도 실종 사건이다. 올해 초 말레이시아 말라카에서 지낼 때 만난 한 독일 가족이 있다. 30대 초반의 싱글맘과 그녀의 15살 딸, 그리고 9살 아들. 세계 여행을 하던 이 귀여운 가족은 우리가 장기 투숙하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고, 일주일 정도 같이 돌아다니며 정을 나눴다. 7살 미루와 9살 아들은 서로 죽이 잘 맞아서 3층짜리 게스트하우스 구석구석을 다다다다 뛰어다니며 잔잔했던 게스트하우스를 바람 잘 날 없는 북새통으로 만들었다. 헤어진 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멈추고 독일로 돌아간 그들과 가끔 화상 채팅을 하며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들 엄마의 페북 담벼락에 딸 사진이 올라왔다. 자식들 사진 올린 평범한 포스팅이겠거니 했는데, 아니다. 뉴스가 링크되어 있다.
- 독일 콜른 출신 15살 소녀 OOO, 9월 말, 집을 떠난 후로 소식이 없음. 아래 사진의 소녀를 본 사람은 어디 어디로 연락 바람.
멍했다. OOO가 실종이라고??? 그 수줍고 다정하고 무지무지 똑똑했던 OOO가??? 주변에서 실종 사고가 일어난 건 처음이다. 카밀에게 얘기했고, 카밀은 바로 아이 엄마에게 연락했다. 독일 경찰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좌파 성향의 ('left scene'이라고 경찰은 표현했음) 정치 조직에 가담한 거 같다며 현재 네덜란드에 있을 확률이 아주 크단다. 엄마의 목소리는 당연히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한 겨울에 홑이불 하나 덥고 자는 작은 소녀처럼. 이상하게 난 ‘해님과 달님’의 여자 동생이 생각났다. 호랑이는 으르렁거리며 밖에 있는데 떡 가지고 온다던 엄마는 오시질 않고, 오빠가 옆에 있다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무서움을 어찌할 바 모르는 여자아이.
난 바로 페북에 접속했고, 네덜란드 엑스펫 큰 그룹 중 하나인 'Expats in the Netherlands' 그룹에 뉴스를 공유했다. 네덜란드에 있을 확률이 크다고 하니 혹시라도 이 소녀를 본 사람 있으면 제발 연락 좀 달라고. 몇 분 후, 띵~ 알람이 왔다. 누군가 포스팅에 첫 댓글을 단 모양이다. 후다닥 서둘러 열어봤다. 그리고 다시 멍해졌다.
- Seems like she went there by her choice, then what's the problem?
즉,
- 지 발로 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저 문장을 수십 번 다시 읽은 것 같다. 그리고 화악~~!! 열이 뻗쳐서 애꿎은 모니터 화면이 깨지도록 소리쳤다.
- 이 쒸바알쒝끼가!!!!!! 이게 지금 말이야, 똥이야!!!!!! 이 미췬 쒝끼!!!!!!
이런 댓글이, 그것도 첫 번째 댓글에 이런 개소리가 달릴 거라고는 진정 상상을 못 했기에, 미간 사이의 주름을 치켜들고 눈은 개구리 왕눈이보다 더 크게 뜨고, 있는 숨 없는 숨 씩씩거리며 생각나는 모든 욕을 퍼부었다. 나 말이다. 욕 안 하는 사람이다. 진짜다. 믿어 달라.
- 이 호로자쒹!!! 개쒝끼!!! 목젖을 쭈욱 늘려 목에 칭칭 감아도 모자를 쒝끼!!! 진짜 입만 뚫리면 다야??? 뭐가 문제냐고??? 야! 너 같은 개썅노무 쒝끼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게 문제다!!! 너 생각이란 게 있는 쒝끼냐??? 15살 소녀가 실종됐다는데, 가족들이 사시나무 떨듯 심장을 졸이며 찾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왓츠 더 프라블럼??? 이따위 똥 덩어리 쓰레기 댓글을 써??? 너 애 엄마 앞에서도 이따위로 말할 수 있어???
으아아아아아아악!!!
저 단 한 줄의 댓글이 날 이렇게 흥분하게 만들 줄이야. 온몸은 커다란 심장이 되어 불끈불끈 뛰고, 적혈구들은 포뮬러 원 레이싱카가 되어 혈관을 달리고, 모공은 넓게 벌어져 뉴질랜드 간헐천처럼 치익치익~ 공기를 뿜고, 안구의 핏줄은 급속 냉동되어 촥 퍼지는 얼음 결정처럼 시뻘게졌다. 설상가상, 얼씨구? 밑에는 이런 댓글도 있네?
- 뭐 재미 좀 보고 있겠지.
- 왜들 이래? 난 17살에 집 나왔어.
- 가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누가 알아?
아놔... 진짜 인간들이... 사람이, 그것도 15살 소녀가 실종됐다고 하면 당연히 그 사람의 안위와 가족의 상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게 먼저 아닌가? 가족은, 특히나 엄마는 행여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갈까 봐 제정신이 아닌데, 아무리 '좌파 조직'이니 '가담'이니 이런 단어들이 시야를 흐리게 한다지만 이게 인간에게 달린 주둥이로 할 소리인가? 단식 투쟁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게걸스레 치킨 뜯어먹는 일베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뭐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 도리의 당연함'의 기준이 너무 높은가? 상상의 상자도 꺼내기 싫다. 자식이 실종이라니.
쌍욕을 퍼부으며 흥분하니 카밀이 무슨 일이냐며 놀래 뛰어왔다. 개쒝끼... 개쒝끼... 내 화를 누르지 못해 눈물이 났다. 젠장, 이런 꼴 보려고 공유한 게 아닌데. 초점을 잃고 방황할 아이 엄마 얼굴이 생각나서 더 눈물이 났다.
진정하자. 이럴 때가 아니다. 말로서 무참히 박살을 내줄까 하다가 지금 중요한 건 내 감정이 아니므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수사는 경찰의 몫이니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성급한 판단이나 추정 댓글은 인간적인 양심이 있다면 제발 지양하고, 지금 제일 급한 건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니 실질적인 도움이 될 정보가 있으면 바로 연락해 달라,라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썼다. 하지만 누가 봐도 요지는 이거였다.
- 닥치고 꺼져. 그리고 만약 이걸 고질적인 네덜란드인의 직설화법이라고 퉁친다면, 좆까라 그래. 내가 그놈의 직설화법 멱살을 잡아다 줘 패 버릴 거야.
대댓글 엔터를 경쾌하게 팍! 누르고 생각했다.
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4. 이건 전초전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해봤자 하등의 쓸모가 없는 존재론적 사유에 파묻히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두 번째 사건... 을 써야 하는데, 하아... 위의 글을 쓰면서 다시 열받아 흥분했더니 계속 쓸 기운이 없다... 그냥 일찍 자야겠다. 그리하여... 내일, 투 비 컨티뉴드.
5. 우씨... 또 열받네... 어디 더 쌈빡한 욕 없나? 괜찮은 욕 수집합니다! 입에 찰지게 붙고 된장처럼 구수하지만 토마토소스처럼 감칠맛 나는, 하지만 상대방의 폐부를 푸우우우욱~ 후벼 팔 수 있는 어벤져스급 욕을 전수해 주실 분 계실까요? 댓글은 민망할 테니 저에게 개인 메시지로 주세요~ ㅎㅎㅎ 그런데요... 이거... 은근히 카타르시스가 오네요... 확실히 욕해야 할 땐 욕을 해야...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어쩜 좋아, 욕의 미학을 알아버렸어!
6. 오늘은 미국 대선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한참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됐든, 트럼프는 무슨 개소리를 할까? 또 얼마나 희한한 글들이 사방팔방 고개를 쳐들까? 절친인 개그우먼 박지선 씨의 사망 소식을 라디오 생방송 중 접한 후 슬픔을 못 참고 대성통곡하며 자리를 떠난 안영미 씨에게 몇몇 매정한 이들은 프로의식 운운하며 그녀의 직업의식을 비난했다. 하아... 정말 왜 이러니? 왜에~! 처음에 말했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리 마음에 실드를 치는 능력이 이젠 발휘가 안 된다. 갱년기인가? 호르몬 과다 분비인가? 폐경이 오려나? 정말이지 이 주책바가지 아줌마 같으니라구! 하지만 아무리 내 신진대사를 탓하려 해도, 이건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 누가 얘기 좀 해달라. 이거,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 프로 불편러인 거야?? 이 험한 세상 하루 이틀 사냐며 프로답지 않게 뭘 그리 호들갑이냐 타박줄 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열받아서 8키로를 뛰었더니 피곤해.
p.s: 조금 전에 아이 엄마에게 혹시 소식 있냐며 메시지를 보냈다. 대답은 'No, not yet.'이었다. 이걸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