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시시껄렁할수록 심오한 오늘의 잡설 in the Netherlands: 잡설도 진화한다. 20/10/08
1. 오랜만에 쓴다. 잡설도 진화하는구나. '오늘의 잡설'에서 '여행의 잡설'로, 그리고 '잡설 in the Netherlands'로. 태국에 있을 땐 그래도 심리적으로나마 '여행의 잡설'이라고 부를 수가 있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시댁에 있고, 미루가 학교에 가고, 이른바 어엿(??)하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네덜란드는 홀란드(Holland)로도 많이 불리는데 사실 홀란드는 네덜란드 지역 이름 중 하나다. 영문으로 쓸 때는 앞에 the가 붙어서 The Netherlands다.
3. 최근 좌절했던 것 두 가지 중 첫 번째: 우리가 사는 마을의 수퍼마켓에는 한국 라면이 없어서 (일본 라면 같은 조무래기들만 잔뜩) 아시안 마켓이 있는 도시까지 버스 타고 30분을 나가야 하는데, 며칠 전 맘 먹고 찾아간 아시안 마켓의 라면 코너에 얼레?? 한국 라면이 불닭볶음면밖에 없는 거라!! 비빔면이나 짜장라면은 바라지도 않아! 그 흔한 신라면도 없고, 너구리도 없다니!! 허걱! 하는 숨소리와 함께 나 완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잖아... 완전 좌절했잖아... 내가 이걸 위해 왕복 7유로나 되는 버스를 타고 나왔단 말인가! 불닭볶음면은 너무 맵단 말이야... 나 못 먹는단 말이야... 다른 아시안 마켓을 찾아야겠어... 아무튼, 결국 또 일본 라면 하나 집어 들고서 수퍼 밖을 나왔다는 눈물의 대서사시.
4. 최근 좌절했던 것 두 가지 중 두 번째: 겨울옷이 필요해서 까서방과 함께 second hand shop에 갔는데,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긴 항상 두당 쇼핑 바구니를 들고 출입해야 하는데, 우리 둘을 끝으로 쇼핑 바구니가 동이 나서 우리 뒤에 줄 선 사람들은 새로 바구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까서방과 내가 각각 바구니를 들고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직원 한 명이 우리를 세우더니 뭐라 뭐라 했다. 난 당연히 더치를 못 알아들었지만 까서방마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혹은 뭔 소리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더니 무표정으로 돌아섰다. 난 어리둥절해서 뭐야? 뭐야? 하니까, 직원이 이렇게 물었댄다.
- Is she your child?
으이이이이잉???이즈쉬유어차일드으???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캭캭캭캭캭캭캭캭캭캭캭캭캭캭캭큭큭큭큭큭큭큭큭큭큭큭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이게뭐야아아아아아아~~~~~~!!!!
아이는 바구니를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내 키가 작기로서니, 내 나이가 몇인데 까서방의 아이냐고? 내 얼굴 안 봤나? 이렇게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피부 망가진 늙은 얼굴의 아이도 있어? 그 자리에서 숨넘어가도록 웃다가 갑자기 좌절의 기운이 몰려와서 꽁해졌다. 젠장, 난 지금까지 안 자라고 대체 뭐 한 거냐.
5. 네덜란드 하면 역시 구린 날씨. 한동안 덥길래 '세상에, 네덜란드가 덥다니! 역시 기후변화!'를 외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흐린 날씨 들어가주시니, 이번 주와 다음 주, 계속 비가 올 예정이다. 날도 짧아지는데, 조하문 노래를 (정확히 말하면 마그마) 들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해이~야아~ 뜨라~ 해이~야아~ 뜨라~ 말갛게 해야아 쏘싸라~
6. 사람이 죽는 걸 바라는 건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서 차마 트럼프 죽어라! 트럼프 죽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내 페북엔 대놓고 죽어라 죽어라 하는 외국인 친구들 포스팅이 종종 보임) 그래도 그는 내 상식 선에선 '나쁜 사람'이므로 내가 어렸을 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배웠던 '권선징악', '사필귀정', '인과응보'가 나쁜 사람들 떵떵거리며 잘만 사는 요즘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기적을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냥 대선 끝날 때까지 죽을똥 말똥 아프면 안 될까 싶었는데, 퇴원하고 백악관으로 향했다는 소식에 김이 샜다. 오늘 아침 까서방이 뉴스 본다며 트럼프 연설을 틀었는데 트럼프 목소리 들으며 잠에서 깨는 기분은 진짜 뭐 같았다.
7. 네덜란드 코로나 대처는 말해 뭐해~ 말해 뭐해~
오늘은 여기까지.
밋밋하고 소소하고 지루하고 무던하고 별 탈 없는, 이게 행복인가 햇갈리는 네덜란드 시골 생활이 두 달하고도 반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