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최승연> 외전 - 나 왕년에...
글 밀릴까 두려워 3호에서 8호까지 모두 워드를 열어놓고 생각나는 대로 왔다 갔다 하며 쓰고 있다.
지금 5호를 쓰고 있는데, 어쩌다 뉴욕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을 때 얘기로 흘러 가길래, 문득 내가 2000년도에 참여했던 본 조비 공연이 생각나서 혹시 유튜브에 있나 찾아봤더니 으하하하하~~~ 있다!
이름하야 Bon Jovi VH1 Storytellers!
세상에나, 존의 첫 멘트를 들으니까 바로 기억나네. 그래, 그가 저렇게 말했었지. 혹시 크래딧에 내 이름이 있나 봤더니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톰 아저씨 이름만 있다. 흐잉... 매치박스 20 Storytellers 공연 DVD엔 내 이름이 있는데.
아래는 2006년 옛날, 이글루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절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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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했던 VH1 Storytellers는 Bon Jovi, Electric Light Orchestra, Billy Idol, Matchbox 20, Goo Goo Dolls 이렇게 5개였다.
특히 본 조비는 내가 톰 아저씨 어스로 들어간 후 첫 번째로 일했던 공연이라 특히 머릿속에 남는다.
보통 Storytellers는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티켓을 구입한 소수의 관객들만 모아 놓고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으며 진행되는데 (그래서 이름이 Storytellers다.) 이 본 조비 공연은 42번가에 있는 대 공연장 Hammerstein Ballroom에서 아예 그들 투어 중 일부로 진행되었다.
세트는 뉴욕의 건물 옥상 컨셉으로 갔다. (처음 스케치랑은 다른 방향으로 갔다.) 물탱크와 광고판을 주요 엘레먼트로 정했고, 광고판에 뉴욕의 여러 모습을 프로젝션으로 때리기로 했다. 멋진 이미지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이 방법 저 방법 쓰다가 결국 MTV 인턴 Matt의 친구를 고용해 공연 이틀 전 급하게 맨하탄의 여러 모습을 디카로 찍었다. 비가 무진장 왔었음에도 그 친구는 꽤 괜찮은 사진들을 찍어왔고 (비가 와서 오히려 더 분위기 있게 나왔다.) 공연 내내 그 이미지들을 스크린에 투영했다.
셋업 하는 첫날 처음으로 대 공연장에 트러스가 세워지고 번쩍거리는 조명이 올라가는 걸 본 나는 어리둥절한 채 굳어버렸고, 특히 MTV의 중역이 내 앞에서 평면도 어디 있냐며 시건방진 태도로 소리 질렀을 땐 완전히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아저씨가 '저건 빌려온 스크린이기 때문에 위에 직접 칠해서는 안 되니 어디 가서 라면상자 같은 것을 찾아내어 검은색으로 칠한 후 삼각으로 잘라 코너에 붙여라'라고 했는데 중간 부분은 왕창 빼먹고 '빌려온 스크린 코너를 검은색으로 칠해라'라고 잘못 듣고선 잔뜩 칠해버리는 바람에 끝나고 나서 원상복귀시키느라 엄청 고생해야 했다. 또 마지막에 MTV 중역이 우리가 구해놓은 스툴이 싫다며 퇴짜를 놓는 바람에 부랴부랴 새로운 스툴을 찾아야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마침 전문 소품 대여소인 Props for Today가 공연장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엄청난 돈을 줘가며 간신히 시간에 맞춰 스툴을 구해올 수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셋업은 끝났고 드디어 관객 입장. 순간 당황스러웠던 것이 누가 뉴저지 출신 노장 밴드 아니랄까 봐 온통 우리나라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볼 수 있는 하늘 끝까지 엄청나게 올린 뉴저지 대표 사자머리에 딱 달라붙은 촌스런 오토바이 라이더 용 가죽잠바를 입은 30대 말에서 40대 여자 아줌마 군단들이 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엄청난 속도로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실제로 본 존 본 조비는 생각보다 훨씬 잘 생겼었지만 키가 작았고 '큰 바위 얼굴'이었다. 리치 샘보라는... 그냥 화면에서만 보는 것이 좋았을 것 같았다.
조명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의 그 스크린이 뒤에 보인다. 또 스툴도 보이는데 '에게, 저 스툴 때문에 그 난리를 떨었단 말이야?' 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스툴이다. 구해놓은 스툴이 더 괜찮았었는데, 정말이지 중역들의 '성향'은 이해가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