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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

by 황서영

대학에서 노래패나 합창단 같은 동아리를 했어야 했다고, 다시 대학에 갈 수 있다면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음악적 취향이 섬세하게 발달한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다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대한 모종의 동경이나 향수 같은 것이 내겐 있는 것 같다. 많은 노래들이 오르내려도 내 플레이리스트의 윗쪽엔 언제나 "너와 나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하는 꽃다지의 <노래만큼 좋은 세상>이 있었으며, <우리 모두 여기에> "모여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그저 힐링과 위로의 노래로 소비되는 것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걱정 말아요 그대>에서도 "우리 다함께 노래 합시다" 하는 대목에 가서는 어느새 사로잡혀버리고 만다. 015B의 <이젠 안녕>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 역시 "어느 차가웁던 겨울날 작은 방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노래가 함께 새로운 생명력과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에 있었던 서울대 법인화 반대 투쟁은 이미 소진된 학생사회의 역량이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이 분출된 사건이었으며, 그만큼 기억할 만한 장면들도 많았다. 학생총회와 본부 점거, 총장실 프리덤과 본부 스탁, 귀에 꽂히듯 선명한 목소리로 이어간 발언과 빛나는 눈빛들. 교수들 말대로 몇 년만 있으면 학교를 떠나갈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학을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공적인 것으로 사고할 수 있었던) 학생들은 "이 미친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본부에 모여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을 불렀고, 이후 대학에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될 모습을 집단적으로 연출하려는 듯 학내의 각 단위에서 자보를 쏟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내가 속한 학과의 건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서 어떤 노래패가 작성한 아름다운 자보를 읽던 순간은 내가 대학에 머물던 시절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이다.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저들은 모르는 감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느낌, 이 싸움에서 머지 않아 패배할 것이지만 그래도 결국 이기는 것은 우리일 것이라는 느낌. 자보의 내용은 물론이고 자보를 쓴 동아리가 어디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자보 중간에 "우리의 노래"에 대한 가사가 인용되어 있었다는 것만이 기억난다.


최은영의 소설 「먼 곳에서 온 노래」에 등장하는 미진의 말은 내가 노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대학에 와서야 토론할 수 있게 된 스물, 스물하나의 아이들이 그게 너무 아프고 괴로워 노래를 불렀어. …(중략)…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201)


나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보며 괴로워하고, 저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르게 살자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음을 확인할 때의 그 충만한 감정. 함께 부르는 노래에 대한 나의 동경은 아주 조금이나마 이러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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