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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평 Oct 27. 2024

두 번째 치유 - 포옹

내 동생 건이

 나는 심한 우울증을 진단받았어. 자살시도를 안 한 게 용하다며 선생님은 날 안쓰러워하셨지. 이 진단을 받는데도 불안하더라. 아, 내가 검사 체크를 유난스럽게 한 건가? 싶어서. 내가 괜히 튀려고, 위로받고 싶어 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이상한 고민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 애써 그 마음을 외면하며 난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들었어.     


 일주일치 약을 받았어. 약을 먹고 정말 신세계를 경험했지 뭐야?

 우선, 창문을 봐도, 날카로운 물건을 봐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그리고 밤에 기가 막히게 잘 자. 정말 오래간만에 기절했다니까? 아, 내가 이전에 살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었구나 하는 마음에 다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어.

 문제는 가끔 약을 빼먹을 때가 있어. 다들 감기 걸리면 약 꼬박꼬박 챙겨 먹어? 난 한두 번은 빼먹게 되는 것 같아. 우울증 약도 마찬가지야. 사실 우울증 약이라고 안 하면 사람들은 다 감기약으로 알걸? 약에 익숙해지니 가끔 먹는 걸 까먹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괴롭더라. 돌아왔다가 다시 또 돌아온 기분이라 비참하더라고.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들은 그대로였어. 엄마아빠는 날 여전히 유난스럽게 쳐다보고 심지어는 억울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어 보였어. 내가 잘해준 건 기억하지 못한다며 정말 억울해했지. 그러면서 건이의 약과 병원은 정말 잘 챙겨. 난 엄마아빠가 건이를 챙기는 게 싫은 게 아니야. 난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내 바람은 나도 조금만 봐 달라는 거지. 나도 인정해 달라는 거지.     


 그날도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 대차게 싸운 날이었어. 정말 역대급으로 말이 통하질 않더라. 벽이랑 대화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했어. 나와 엄마의 싸움에 아빠는 한 번 버럭 하더니 지겹다는 듯 방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방 안에선 코미디 영화 소리가 들렸지. 집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사이로 나의 절규는 더더욱 잘 보였어. 하지만, 엄만 잘 보이지 않았나 봐.     


 난 내 방에 들어가 열심히 삭혔어. 엄마아빤 잘만 자더라? 아주 그냥 코까지 야무지게 골더라고. 그리고 하필, 그날 내가 약을 잊었어. 생각이 나자마자 급히 먹긴 했지만, 이미 난 내 감정에 잠식당한 뒤였지.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어.

 ‘쿵... 쿵... 쿵...’

 왜인지 하나도 아프지가 않더라. 그래서 점점 더 세게 박았어.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봤어. 정말 이래도 안 아프냐고. 어.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이마가 부워올라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어. 그리고 마음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어. 답답함만 계속해서 올라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이건 정말 방법이 없겠더라고. 난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 이미 시간은 새벽 2시였고 쿵쿵 벽을 박는 소리에도 엄마아빠는 미동조차 없었지.


 그래서 난 결국 현관문을 열고 나와버렸어. 너무 비참했어. 이젠 정말 끝이구나. 내가 여길 뜨고 나면 엄마아빠가 대차게 아팠으면 했어. 그냥 끝까지 아팠으면 했어.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수록 마음은 더 답답해지더라.

 뛰쳐나오고 막 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우리 집은 14층이었거든. 난 얌전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했어. 그날 따라 왜 이리 느린 건지. 속 터져 죽는 줄 알았어. 난 빨리 뛰어내리고 싶은데 말이야.


 그런데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어. 난 애써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지. 그리고 계단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누나 어디가?”

 난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어. 잠옷차림의 건이가 날 바라보며 서있더라고.

 “계속.. 소리가 나길래.. 걱정돼서..”

 건이를 보자마자 난 다시 울기 시작했어. 정신과에 처음 간 날 보다 더더욱 눈물이 세차게 흐르더라. 아파트 복도라 소리 내서 울진 못하기에 입술을 꽉 다물었더니 이상한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어. 건이는 그런 나를 보고 조심히 날 유도했어.

 “여기 추워.. 누나 여기 많이 추워..”

 그리고 조심히 내 손을 잡더라. 난 차마 뿌리칠 수 없었어. 그리고 건이를 따라 한 발 한 발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지.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궜는데, 건이의 맨발이 눈에 들어오더라.     


 건이는 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앉혔어. 그리고 옆에 앉았지. 날 빤히 쳐다보더라고. 그런 건이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돌렸어. 그랬더니 갑자기 내 몸이 따뜻해지더라. 건이가 날 꼭옥 끌어안아줬어. 몸이 부서져라 아주 꼭옥 끌어안더라. 숨이 잘 안 쉬어졌지만 따뜻해서 눈물이 났어. 그리고 내 어깨도 조금씩 젖기 시작했어.

 날 계속 안고 있던 건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

 “난 누나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

 “그냥 누나를 보내기엔 누나는 너무 소중해.”     


 난 건이를 항상 지키며 살아왔어. 어릴 때도 이상한 새끼들이 우리 건이를 괴롭히면 달려 나가 혼내주곤 했지. 가끔은 나 자신보다도 소중해. 누군가 내가 건이 대신 죽어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난 기꺼이 대신 죽어줄 수 있을 만큼 사명감이 있었어. 그만큼 건이를 열심히 지켜왔어.     


 그런데 그런 건이가 날 지켜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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