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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평 Oct 27. 2024

첫 번째 치유 - 인정

정신과 방문기

 다들 정신과 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 난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어.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 평범한 사람들이랑은 뭔가 다르단 느낌이잖아? 꼭 특별한 사람들이 가는 곳 같았어.

     

 그리고 내가 그 특별한 사람이 되는 출발점에 서있네. 그 애가 준 정신과 리스트는 참 좋았어. 내 성향까지 생각해서 조사해 줬더라고. 이별하기 전 마지막 선물이 엑셀에 정리한 정신과 리스트라니. 진짜 특별하지 않냐?

 사실 그 애에게 리스트를 받고 나서 난 한동안 그 엑셀을 열어보지 않았어. 내가 정신과에 간다는 것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거든. 말이 안 되잖아? 난 평범한걸? 내가 겪은 일들 모두 평범하대. 그렇게 큰일이 아니래. 그리고 뭐랄까.. 내 발로 정신과에 가면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아? 다들 그 정도 우울은 달고 살 텐데 너무 내가 유난인 것 같잖아..     


 그 애와 헤어지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난 본가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어. 학교 수업도 없고, 실습도 없고. 정말 시간이 차고 넘치더라. 그런데 학교 수업도 없고, 작업도 없고, 특별한 일도 없는데 내가 잠을 못 자더라? 하루 4시간씩 자던 학기 중보다 잠을 더 많이 못 잤어. 뭐 그렇게 할 일이 많냐고? 없어. 그냥 누워있는데, 잠이 들지 않아.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 봐도 잘 수가 없어.

 그리고 저번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숨쉬기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잦아졌어. 목구멍과 콧구멍이 다 턱 막히는 느낌이 들면서.. 싱크홀로 빠져서 추락하다가 상어가 사는 깊은 호수에 빠져 점점 가라앉는 그 느낌말이야. 난 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내가 사람이 싫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집에 혼자 있다가도 한 번씩 호수에 빠져있다가 나와. 이러다 정말 죽겠단 생각이 들더라.

 살기가 싫었어. 아침마다 눈을 뜨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더라. 맛있는 음식도, 흥겨운 노래도, 아늑한 내 방도, 친구들도 가족도 다 소용이 없어. 창문만 보면 그렇게 난간에 올라가고 싶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보이면 겁은 나지만 한 방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도 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많이 아플까? 땅에 떨어지기 전에 추락하는 과정에서 이미 기절한다던데 그럼 할만하지 않을까? 살면서 처음으로 해 본 상상들을 많이 하게 되더라.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아. 난 그렇게 가족들이 싫을 수가 없었어. 그들이 그렇게 평온하게 사는 것도 너무 싫었어. 우리 가족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분명 나를 이렇게까지 화나고 아프게 만든 이유가 있는 게 그 이유들이 하나하나 뜯어보면 하찮아 보여서 너무 싫었어. 내가 정말 유난 떠는 것 같잖아.     

 그래도 엄마에게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했어. 너무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진짜 죽고 싶다기 보단 엄마가 건이에게 해줬던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힘듦을 인정해 주길 바랐어.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딱 이랬어.

 ‘얘가 왜 이리 유난이지..’

 그때 난 깨달았어. 아, 엄마는 나의 상황과 마음을 절대 인정해주지 않구나. 아니, 이해할 수 없구나. 아니, 엄마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이 유난스러운 우울을 인정해 주고 바라봐주지 않겠구나 하고.

 그래서 난 내가 나의 이 유난스러운 우울을 인정해 주기로 했어.     


 그 애랑 헤어지고 거의 6개월 만에 보내준 엑셀을 열어봤어. 그리고 우리 집 부근에 있는 정신과에 하나하나 전화를 돌렸지. 난 정신과를 고를 수 없었어. 예약이 다 차지 않은 정신과가 딱 하나밖에 없었거든. 다른 곳들은 내년은 되어야 갈 수 있을 정도로 예약이 꽉 차있었어. 그래도 있는 게 어디야 그렇지?

     

 예약한 날이 되고 난 정신과를 향했어. 가족들에겐 그냥 산책 간다고 둘러댔지. 만약 정신과에 간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나에게 유난스럽단 표정을 보여줄 것 같았어.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한 정거장 가는데, 다시 숨이 안 쉬어지더라. 아, 이러다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버스 기사님껜 죄송하지만 난 나름 발견해 주는 사람도 있고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일곱 정거장을 지나고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넜어. 초록불이 되기 3초 전 잠깐 망설였어. 이렇게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로 걸어가면 어떻게 될까? 난 매가리 없이 휙! 튕겨나가겠지. 그리고 차가울 아스팔트 위에 엎어져서 눈이 뒤집힐 거야. 의도치 않게 날 친 운전사는 손을 덜덜 떨며 두려움에 떨 거고 지나가던 시민들은 119에 신고를 하거나 나의 상태를 살펴주겠지? 와우, 이런 민폐가 다 있나.. 그냥 생각만 하고 끝냈어.   

  

 횡단보도를 건너 번쩍번쩍한 건물 앞에 섰어. 와, 요즘 건물들 진짜 잘 되어있구나. 빤짝빤짝하니 너무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뒀더라.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난 정신과가 있는 3층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갔어. 빨리 도착할까 봐 너무 무서웠거든. 한 발 한 발 올라가는데, 속에서 알 수 없는 창피함과 분함이 올라오더라.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어.


 정신과에 도착하고 문을 열어야 하는데, 도저히 손이 손잡이에 올라가질 않았어. 이걸 잡으면 정말 끝나는 것만 같았어. 예약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너무 괴롭더라. 결국 내 뒤에 올라오던 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가실 때 슬쩍 따라 들어갔어.

 정신과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에서 수도꼭지를 돌린 것 마냥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 내 의지가 아니었어. 그냥 눈에서 물이 계속해서 쭉쭉 흘러내리는 기분이었어.

 ‘와 내가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구나’

 정말 비참했어. 처음 방문한 환자들이 쓰는 문진표를 쓰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 카운터에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은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곤 무표정으로 휴지를 건네셨어. 나 말고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닌가 봐.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나처럼 유난스러운 사람이 많은 건가 싶어서 위로가 되었어. 문진표 작성을 마치고 난 대기실에 가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틀었지.     


 노래를 5곡쯤 들었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난 검사실로 이동했지. 무슨 검사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건지. 검사를 하는데 거진 30분이 걸린 것 같아. 검사지 질문들은 참 날카롭고 직설적이었어. 간지러운 곳들을 긁어주는 것처럼 솔직해서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로 들어갔지. 선생님께서 날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시더라. 그리고 난 선생님의 첫마디에 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     


 “유난스럽지 않아요. 잘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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