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청소법_ 마스노 순요

책기록

by 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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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이 아니라도 절에 가면 마음이 평온해지곤 한다.

잘 다듬어진 정원, 법당 그리고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스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공간 그 자체가 설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마음을 ‘절’에 비유하셨다.
마음속에 선입견과 집착 같은 티끌이 쌓이면,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했다.
절이 어지럽고 더럽다면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은 없듯,
마음이 흐려져 있으면 괴로운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청소를 해야 한다.

그 말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집은 회복하고, 쉴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그런 신성한 곳이 어질러져 있다면 어떨까?

아마 되려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다.


예전에는 ‘신발(履)’이라는 한자에 ‘부정(不淨)’의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즉,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행위는 밖에서 묻은 부정함을 털어 집안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관은 얼굴과 같다고 하셨다.

말끔하게 정돈된 현관은 밝은 인상을 준다.

마치 웃음으로 환영하는 것처럼.


그래서 스님들은 절을 하루에 적어도 3번 청소를 하신다.

별다른 청소도구도 없다.

사용한 것을 제자리에 두고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버리고 정리한다.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그들은 마음을 닦는다.

본래의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마음, 불성을 깨닫는다.




일본의 사찰 입구에는 “脚下照顧(각하조고)”라는 글귀가 있다.

‘당신의 발밑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신발을 가지런히 두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라는 가르침이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는 마음은 이미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

그러나 수행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지금 현재 여기. 신발을 벗는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의 얼굴은 모두 다르지만, 눈은 가로로, 코는 세로로, 입은 그 아래 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진리다.
식사 후 그릇을 씻는 것도, 아침마다 방을 정리하는 것도 진리의 한 모습이다.
참된 가르침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빛난다.

그래서 매일 청소를 해야 한다.

집을 닦으며 마음을 닦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마음의 때를 벗겨내야 한다.
행복은 무언가를 얻을 때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버릴 때 찾아온다.




화가 나거나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살 때,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머리가 반응하고 있는 순간이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어 호흡을 고르고,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자.


청소란 단지 먼지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맑히는 수행이다.
비우고, 닦고, 다시 제자리에 두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평온을 배운다.

청소는 곧 명상이다.
마음을 닦는 일이자, 삶을 맑히는 일이다.
결국 깨끗이 정돈된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마주한 책에서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나는 내가 사람을 잘 판단하고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마음은 힘들어져 갔다.

사실 그건 깨끗하지 못한 나의 마음의 티끌들이 만들어낸 선입견과 고정관념이었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별로라고 생각한 세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많이 깨닫고 있다.

나의 오만한 판단이었다.


청소를 해야겠다.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야겠다.


섣불리 판단하지도, 나쁘게 바라보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현재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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