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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아리 Mar 25. 2023

나는 깜박이는 등대입니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하루 사이 새벽 공기가 영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11월도 다 찼으니 추워질 때도 되었죠. 새벽 걷기를 멈춰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됩니다. 날이 추워지면 질수록 새벽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 달까지만 걸을까? 눈이 올 때까지는 걸을까?

에이, 우선은 걷고 봅니다.


어둠이 길어지는 계절은 그만큼 오래도록 가로등 빛이 함께여서 좋습니다.

여름날, 도망치듯 사라지는 새벽빛들은 괜한 아쉬움을 남깁니다.. 겨울 새벽,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그 어둠이 좋습니다. 하루의 시작점이면서도 아닌 척 구는 그 능청맞음이 좋습니다. 가로등 빛이 내뿜는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도는 여행자의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저는 좋습니다


날이 추워지니 사람들의 모습이 부쩍 줄었습니다. 석사천길 홀로 아득히 난 길을 걷습니다. 새들도 깨어나지 않은 시간, 세상에 존재하는 건  나와 앞으로 쭉 뻗은 저 길뿐인 듯합니다. 외로움보다는 순간 두려움이 몰려오네요.


총총히 박힌 가로등 불빛이  등대를 연상케 합니다. 나를 빛으로 인도하는 등대. 어두워지지 말라고 내가 여기서 반짝일 테니 그 빛 따라 길 잃지 말라고 하는 듯합니다.

어제의 내가 아이의 등대였던 것처럼 말이죠.


부모는 아이의 등대와 같습니다. 선명한 빛으로 망망대해 아이의 마음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아이를 위해 빛을 뿜어내는 등대.

밝은 빛 뒤에 어둠은 숨긴 채 그저 아이에게 빛으로서 존재하는 등대입니다. 나를 등진 채 바다 위를 헤매다 다른 방향을 향하는 아이에게도 깜박임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이가 돌아서서 나를 보지 않으면 어쩌지?' '나를 못 찾으면 어쩌지?'불안한 마음은 어둠 뒤에  숨긴 채  거기 그 자리에서  깜박깜박... 아이가 보기를 오늘도 바라고 있습니다.


부모라는 자리가 참 힘듭니다. 넘치지도 말아야 하며, 덜 차지도 않아야 합니다. 아이가 노 젓는 배를 따라갈 수도 없고 그저 붙박이 깜빡거림이나 연신하고 있어야 하니 말이죠. 그래도 기다려야 합니다. 망망대해 누비며  모진 고생 다 겪어보도록 내 아이 그래서 단단해지는 거 묵묵히 지켜봐야 합니다.

등대의 운명은 그렇습니다. 다 내려다보며 삭혀야 하는 것이죠. 지켜보기 너무 힘들다 싶으면 잠깐 고개 돌려 어둠 속에서 울다 나오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을 비추는 저 가로등 앞에 와서 잠시 잠깐 생각을 내려놓고 깜박여보면 됩니다.

세상 어려운 일 투성이지만 부모가 되어 알았습니다.

'나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신이 나에게 부모 되기를 허락한 걸 보면...'


새벽길, 자연에게서 위로받으며 그렇게 다시 뜨거워진 마음으로 내 아이에게로 발걸음을 돌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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