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날 차박이라니!
이 일정이 가능해?
안녕하세요. 전 마루예요. 오늘은 누나의 만행을 알리려고 누나 잘 때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쉿, 제가 컴퓨터 할 수 있는 건 비밀이에요! 비밀번호를 안 바꾸는 누나가 비밀번호 바꾸면 이제 동영상을 못 보잖아요. 아, 일단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누나가 나한테 무슨 일을 했는지. 한숨 없인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일 걸요?
그 날은 금요일이었죠. 누나가 친구 누나를 불러 놓고 아침부터 한참 동안 보이질 않았어요. 나 빼놓고 혼자 놀러 간 게 분명했죠. 처음엔 누나 혼자 길 잃고 집도 못 찾아올까 봐 걱정됐는데요, 친구 누나랑 전화하는 걸 들어보니 역시 길을 헤매고 있었어요. 무슨 시승차에 당첨이 됐대요. 그럼 나도 같이 가야지! 흥. 전 삐졌지만 그래도 누나 아니면 밖에를 나갈 수 없으니까 최대한 반가운 척해줬어요. 누나가 미안하다면서 고기를 꺼내 주길래 용서해주기로 했지만요.
누나는 신이 나서 저랑 누나 친구를 태우고 커피를 사러 갔어요. 낯선 캔넬에서 몹시 걱정이 됐지만 신나 하는 누나를 보니 어쩔 수 없네, 싶어서 푹신한 캔넬에서 잠을 잤어요. 그러다 얼핏 누나가 들떠서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다음날은 여기저기 다닐 거래요. 부산도 가고 대구 들렀다가 대관령도 간다고요. 부산에서 누나가 마음대로 정한 제 짝꿍 천둥이도 보고 대구에서는 곤 누나를 만난 대요. 누구든 보는 건 좋아요. 하지만 차는 조금만 탔으면 좋겠어요. 강아지 신님, 있다면 우리 누나 좀 말려주세요.
어디로 끌고 가는 거죠?
토요일 아침. 누나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준비를 시작했어요. 혹시 나를 잊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멍! 나 여기 있어 누나!
어, 마루도 갈 거야. 가서 천둥이 누나도 보고 맛있는 간식도 사 오자!
천둥이 누나 보러 가는 거면 번개 형도 있겠네! 그건 좋아요. 그래서 부산엘 다녀왔어요. 누나가 새로운 차 운전을 못 하는 건 아닌지 옆에서 지켜보며 가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갔더니 새로운 강아지들도 많고 정말 흥분됐어요. 나 좀 봐! 나랑 놀자! 나 마루야! 하고 열심히 저를 어필했는데요, 누나가 그럴 때마다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빌었어요. 나참. 말을 해야 내가 여기 있는지 알 거 아냐!라고 항의해봤지만 누나가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길래 좀 봐줬어요.
누나가 부산 가깝댔는데, 갈 때 2시간 30분, 올 때 2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어요. 누나는 모르겠지만 저도 시간 가는 건 안다고요. 아, 누나가 혼자 졸면 어떻게 하지? 신경 쓰느라 잠도 못 잤더니 조금 피곤해요. 부산에서 천둥이 누나랑 번개 형이 격하게 반겨줘서 누나한테 살려달라고 했지만 누나가 친해져야 한다면서 모른 척했어요. 배신자. 이제 쉴 수 있겠죠? 눈이 자꾸 감겨요.
밥보다 잠을 선택해서 자고 있는데 누나가 또 주섬주섬 옷을 입어요. 아, 이번엔 산책을 나가는 거겠죠? 나, 나도 데리고 가야지! 웡웡! 누나는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요?
마루, 이제 대구 가서 곤 누나(강아지)랑 대관령 가자.
아니야. 이제 어디 안 가도 돼. 집 앞에서 다른 강아지들이랑 소통하고 싶다고. 자꾸 어딜 가? 해봤지만 누나는 저를 옆자리에 태우고 또 어디론가 차를 몰기 시작했어요. 하. 정말. 누나 옆에 있고 싶지 않아서 뒷자리로 가서 누워 있었어요. 나 피곤하다고! 흥. 하지만 대구에 도착해서 곤 누나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건 근사했어요. 새로운 동네에는 엄청 센 친구들의 인사가 가득했죠. 나 마룬데, 두 살이고, 등 저도 최대한 제 소개를 소변과 함께 남겨 놓았죠. 몇 번 안 남겼는데 누나가 갑자기 절 끌고 달리기 시작하네요. 같이 가! 여기 낯설어! 누나를 따라 뛰었더니 곤 누나가 있었어요. 그리고 다 같이 차를 타고 또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자꾸 어디를 가는 거야. 대관령이 이렇게 먼 데였어? 곤 누나는 엄마 무릎에 있는데 나는 왜 누나 무릎에 못 앉아? 응?
마루, 누나는 운전해야 되니까 뒤에서 자. 도착하면 깨워줄게.
아, 누나 정말 미워요. 몸을 동그랗게 말아봤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문 소리가 나고 누나가 사라졌어요! 누나! 누나! 어디 갔어! 내가 운전해서 누나를 찾아와야겠어요.
누나가 분명 이렇게 잡고 돌렸는데? 왜 내가 하면 안 되지? 끄응. 아무리 해도 이 커다란 녀석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해요. 누나아! 목 놓아 불렀지만 누나는 오지 않고 전 초조해지기 시작했죠. 움직여! 끄응! 어? 그런데 누나가 와요. 화장실을 다녀왔다면서 저를 데리고 내렸어요. 이상한 눈사람도 있고 몹시 추운 곳이었죠. 아직 멀었어? 여기가 아니야?
응, 좀 더 가야 돼. 삼십 분 정도 가면 돼.
누나. 다음엔 이렇게 먼 데 올 거면 나랑 진지하게 얘기 좀 하자. 응?
이 추운 날 여기서 잔다고?
누나가 다 왔다며 내리라고 했을 땐 엄청 깜깜하고 추운 곳이었어요. 어우. 코로 순식간에 찬 공기가 밀어닥쳐서 조금 얼떨떨했죠. 사방에 낯선 냄새였어요. 하지만 곤 누나가 저기로 뛰어가니까 나도 용감한 척 따라갔어요. 혼자면 누나 옆에서 꼼짝도 안 했을 거예요. 곤 누나! 같이 가! 곤 누나를 따라 여기저기 다녔는데 사람 누나가 다 됐대요. 이모가 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어요. 뭐가 다 됐지? 들어가 보니 누나가 이불을 깔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맛있는 냄새를 가득 풍기면서 치킨을 먹기 시작했어요. 나도 고생했어! 나도 맛있는 걸 달라고! 아무리 끙끙거리며 이야기를 해 봐도 누나는 요지부동, 자꾸 맛없는 걸 먹으래요. 그나마 이모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줬지만 나는 그게 먹고 싶지 않았다고요. 누나, 나도 치킨! 나도 닭 먹을 줄 알아! 안다고!
넌 양념 때문에 안 돼. 너 나중에 아프대. 먹지 마. 이모가 맛있는 거 주는 데 왜 안 먹어?
누나 진짜. 우리 누난 양심이 없나 봐요. 그렇게 차에 태워 흔들어 놓고 속도 안 좋은 데 맛있는 걸 줘야죠. 누난 정말 나빠요. 흥. 전 삐져서 곤 누나에게 놀아달라고 했지만 곤 누나는 이모가 주는 걸 맛있게 먹고 있었어요. 휴. 세상에 제 편은 없는 걸까요? 사람도 둘이나 있고 강아지 누나도 있었지만 전 혼자 정말 외로웠죠. 우리 누나는 제가 삐져 있거나 말거나 눈이 부어서 곧 잠이 들었어요. 저도 집에서 그러듯 누나 발치에서 잠 좀 자보려고 했는데, 누나가 발 사이를 안 벌려줘요. 앞발로 누나 발을 긁었지만 평소라면 벌려 줬을 텐데 누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죠. 추운데. 어쩔 수 없이 이모 발치에 가서 이모 종아리를 베고 누웠어요. 피곤하니까 금방 잠이 들었죠. 그런데 너무 추워요. 아으으. 추워서 안 되겠어요. 누나 코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니까 그거라도 쬐야겠어요. 누나, 누나밖에 없어.
컥, 마루. 이리 와. 여기서 자자.
아, 이제 좀 잠이 들려고 하는데 누나가 갑자기 끌어당겨요. 누나가 덜덜 떨고 있어요. 그래도 누나가 날 안고 자는 건 답답해서 싫으니까 다시 잠 잘 만한 곳을 찾아다녔어요. 아아, 누나. 우리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
어흐. 마루, 춥지? 누나도 너무 춥다. 아, 핫팩을 안 깔았구나!
누나가 바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심하더라고요. 추울까 봐 핫팩을 가져와 놓곤 안 깔고 있었대요. 그래서 자다 말고 벌벌 떨면서 핫팩 포장지를 북 찢어서 깔고 자느라 저도 잠을 못 잤어요. 아, 그런데 핫팩이란 건 정말 따뜻하네요. 누나랑 코를 맞대고 핫팩 위에서 슬몃 잠이 들었어요.
우와, 이게 눈이야?
삐리리리! 뭐야 뭐야! 뭔데 뭔데!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살폈어요. 낯 선 사람은 무섭거든요. 곧 누나가 부스스 일어나서 매일 들여다보는 핸드폰을 만졌어요. 그리고 갑자기 주섬주섬 바지를 갈아입더니 차에 시동을 켜고 저한테 눈을 보러 가재요.
눈이 뭔데? 했지만 어차피 제 말은 안 들어주니까요. 멍하게 앉아서 내리기만 기다렸어요.
그렇게 누나가 내려준 곳은,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나는 곳이었어요. 바닥은 시원하고 뭔가 발도 푹푹 빠지는 게 곤 누나도 신나서 뛰어다니고 정말 재밌는 곳이었죠. 곤 누나랑 신나서 뛰어다니는데 갑자기 곤 누나는 쭉 가고 우리 누나는 반대 방향으로 가요. 왜? 누나, 곤 누나 저 쪽으로 갔는데?
어, 누나가 발이 아파서 더 못 가. 미안.
아아. 곤 누나 저기로 갔는데. 난 같이 못 가?
어, 미안해. 우린 먼저 가 있자.
휴. 어쩔 수 없죠. 안타까운 표정의 이모가
마루 제가 데리고 다녀올게요.
라고 했지만 이모 힘들다고 누나가 단번에 거절했어요. 눈길 걸어본 걸로 만족해요. 견생, 그런 거 아니겠어요. 사람이 없으면 가고 싶은 길도 못 가고요. 그런 거죠.
결국 누나랑 다시 차로 돌아왔어요.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누나, 언제 집에 가? 하고 물었더니 누나 표정이 어두워졌어요.
어, 마루야. 이제 대구 들러서 곤 누나네 내려 주고 우린 집에 가면 돼.
그런데 왜 울 것 같은 표정이야?
어, 지금 오전 11신데, 집에 도착하면 밤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어.
아아. 누나. 다음엔 여기 오지 말자. 알았지?
아니야. 그래도 여기 안 오면 눈 못 봐.
누나, 눈이 재밌기는 한데, 나 너무 힘들어.
그, 그래. 다음엔 좀 가까운 데 가보자.
아니면 잠이라도 편하게 자자. 알았지?
그래, 그래.
대답을 하는 누나 표정이 떨떠름해요. 누나는 분명 제 핑계를 대고 또 전국 어디든 갈 거예요. 휴. 그래도 누나. 집 나오면 개고생이야. 다음엔 좀 가까이 다니자, 응? 아니면 하루에 한 군데만 가자! 알았지?
노력해 볼게.
봐요. 우리 누나 대단하죠?
집이 최고예요.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어요. 아아, 정말 피곤했죠. 누나도 씻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어요. 대관령에서 기념품이라며 옥수수 막걸리도 사와 놓곤 마시지도 못했어요. 냄새만 엄청 풍기고 말이죠. 으이그. 누나 얘기를 할 건 아니죠. 일단 저 잠 좀 자구요.
매일 누나를 졸라서 나가는 건 정말 행복하고 신나는데 왜 차 타고 멀리 가는 건 별로일까요? 차에서 너무 심심해서 그럴까요? 그럴 땐 뒷자리 선반 위에 올라가서 뒤에 오는 차들 구경하면 되긴 하는데요, 가끔 너무 눈이 부시기도 하고 뜨겁기도 해서 오래 못 누워 있겠어요. 누나는 왜 이렇게 차를 타고 어디 가는 걸 좋아하죠? 가서 친구들 만나고 새로운 냄새 맡는 건 좋지만 하루 종일 차에만 있는 건 싫거든요. 그래도 누나 덕분에 눈에서 뛰어도 보고 맛도 보긴 했어요. 집 떠나면 개고생이지만 이상하게 누나를 졸라서 한 번 더 가고 싶어 져요. 누나의 만행을 이르려고 했는데 이상해요. 사실 길게 차를 타고 간 곳에서는 그만큼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 많았거든요. 다른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신나고 재미있는 냄새도 많이 맡고요. 강아지들이나 고양이들 말고 다른 동물들이랑 인사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누나가 데리고 가 준 선자령 등산길에도 제 소식 남겨놨는데, 다른 친구들이 좋아요 눌러주겠죠? 생각하니까 슬몃 웃음이 나와요. 하지만 이 일정은 아니에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누나.
다음엔 한 군데만 가자, 한 군데만! 제가 쓴 건 비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