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은 타인의 수고로 완성된다

- 여름 옥수수와 단풍나무 길에서 배운 공존의 미학

by 노란 잠수함

여름은 바야흐로 옥수수의 계절이다. 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저 연하고 노오란 옥수수를 만나기 위해 지난 삼백예순날을 기다려 왔다.


그 기다림의 보람이 있어, 올해도 어김없이 유월의 끝자락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햇옥수수를 맛보게 되었다. 옥수수는 늦여름인 구월까지도 나오지만, 나처럼 치아가 부실한 사람에겐 유월 말에서 칠월 초 사이의 녀석들이 제격이다. 껍질이 연하고 알갱이가 부드러워 씹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가 집에서 쪄 먹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집에서 찌면 특유의 구수한 향이 살아나지 않고, 맛도 왠지 밍밍하게만 느껴져서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는 집 근처 교외의 ‘옥수수 거리’에 있는 작은 가게 하나를 마음속에 찜해두고 해마다 찾아간다. 캄보디아에서 이주해 한국인 남편과 꾸려가는 천막 가게다. 장작불을 지펴 거대한 가마솥에 옥수수를 삶아내는데, 솥뚜껑을 열 때마다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달큰한 냄새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입소문이 났는지 주말이면 대기 줄이 인도 밖까지 길게 늘어선다.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느라 가게 안은 늘 분주하다. 옥수수 껍질을 벗겨내는 일에만 대여섯 명이 매달려 있다. 올해는 아주머니의 친정 식구들까지 합세한 듯, 솥 옆이 더욱 왁자지껄해 보였다. 그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덕분에, 나는 올해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은은한 향이 살아 있는, 간간하고 고소한 옥수수를 한입 베어 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제철에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옥수수 두세 개로도 사람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옥수수가 누군가의 뜨거운 노동과 정성으로 삶아졌다는 걸 알기에, 그것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선다. 내가 아닌, 타인의 수고로 건네받은 계절의 선물인 것이다.


며칠 전, 그와 닮은 뭉클함을 느낀 일이 있었다. 늘 산보하는 산의 둘레길. 어느 날부터인가 그 길가에 어린 단풍나무 묘목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심어졌다. 처음엔 구청에서 조성한 사업이겠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던 중, 한 묘목 가지에 걸린 작은 코팅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단풍나무를 심는 데 사용한 괭이와 호미, 쇠삽을 누군가 가져가셨다면, 제발 다시 돌려주세요. 제게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의 공사가 아니라, 누군가 홀로 이 수십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 그가 흘렸을 땀과 시간, 그리고 잃어버린 도구를 찾는 간절한 마음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동안 아무 대가 없이 이 단풍나무 길을 거닐고 있었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그 길은 내게 전혀 다른 의미의 산책로가 되었다.

누군가가 둘레길에 심어 놓은 단풍나무 묘목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드는 몫보다 타인이 채워주는 몫이 훨씬 더 클지도 모르겠다고.


치주염으로 고생하는 나를 성심껏 치료해 주는 정직한 치과의사, 시원한 커피를 정성껏 내려주며 환하게 웃는 카페 직원, 파마할 때마다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을 내어주는 미용실 원장님, 여름이면 찾는 냉면집의 유쾌한 주인장,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구해다 주는 친절한 도서관 사서들….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존재 하나하나가 내 일상을 얼마나 윤택하고 행복하게 지탱해주고 있는지. 내 삶의 풍경 속엔 늘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 나는 기도의 내용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타인의 건강과 번창을 바라는 마음. 그것은 어쩌면 나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고 싶은 작은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탈해야 나 또한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남을 위한 기도가 돌고 돌아 결국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아름다운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닐까.


오늘 밤은, 뜨거운 장작불 앞의 캄보디아 아주머니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잃어버린 호미를 찾으며 묵묵히 단풍나무를 심은 그 이름 모를 이의 안녕을 빌어본다.


그들의 삶이 옥수수 알갱이처럼 꽉 차게 여물기를. 그들의 마음이 단풍처럼 곱게 물들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아프지 않고 계속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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