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툴러서 더 빛나는, 우리의 ‘처음’에 대하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출근길. 여느 때처럼 도로는 붉은 테일램프의 행렬로 꽉 막혀 있다. 신호를 기다리며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답답한 흐름. 그 와중에 유독 내 시선을 잡아끄는 차 한 대가 있다. 뒷유리에 큼지막하게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경차다. 도로 주행 연수 중인지, 차선을 바꿀 타이밍을 잡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 때문에 뒤따르는 차들도 덩달아 거북이걸음이다.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조바심이 난 내 손은 수시로 클락션을 누를까 말까 망설인다.
교차로를 앞두고 그 차가 가까스로 옆 차선으로 빠져나갔다. 겨우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산 넘어 산이라던가. 이번엔 아까보다 더 큰 글씨로, A4 용지에 매직으로 꾹꾹 눌러 쓴 ‘왕초보’ 종이를 붙인 차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핸들을 처음 잡은 듯 주춤거리는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오늘따라 도로는 마치 ‘전국 초보들의 궐기대회’라도 열린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도착해,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창가에 섰다. 비 내리는 운동장을 바라보는데, 문득 아침 도로 위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그 초보 운전자들이 떠올랐다.
‘초보(初步).’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처음 내딛는 걸음’이다. 아기가 첫걸음을 뗄 때 수천 번 넘어질 각오를 하듯, 모든 첫걸음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아침, 그 빗길 도로 위엔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셈이다. 두렵지만 핸들을 놓지 않고 낯선 길 위로 자신을 내던진 그들. 사실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 격려받아 마땅한 용자(勇者)들이다.
운전면허증의 잉크가 마른 지는 오래됐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서는 여전히 초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이라는 새로운 도로 위에 선다. 이 길은 어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다. 어디서 돌발 상황이 튀어나올지, 언제 폭우가 쏟아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매일 아침 조심스레 마음의 핸들을 잡고 하루를 몰아가는 나 또한, 저 도로 위의 초보 운전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마음, 잘 몰라도 일단 부딪혀 보겠다는 태도, 어제보다 딱 한 뼘만 더 나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그 떨리는 마음을 품고 오늘도 나는 ‘인생 초보’로서 시동을 건다.
초보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특권이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흉이 되지 않고, 서툰 실수가 용인되며, 부족함을 솔직히 드러내어 배움을 청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오직 초보에게만 허락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우리는 종종 능숙하게 ‘잘하는 것’에만 가치를 두지만, 사실 더 귀한 것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해보려는 마음’이다. 초보의 걸음은 비록 느릴지언정, 그 안에는 꾸밈없는 진심이 있다. 때로는 그 투박한 진심이 세련된 능숙함보다 더 깊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기왕에 평생 초보로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근사한 초보’가 되고 싶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낮은 자세로 배워 나가며, 실수에도 자책 대신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 “제가 아직 좀 서툽니다. 배우는 중이에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담대한 초보로 늙어가고 싶다. 초보라는 말은, 아직 내게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이제는 도로 위에서 비틀대는 ‘초보운전’ 딱지를 보면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서툰 핸들 조작, 주춤거리는 속도,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 엉뚱한 깜빡이들…. 그 어설픈 움직임들 속에 담긴 누군가의 간절한 용기와 진심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생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매일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고, 멈추고, 다시 출발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영원한 초보가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도 빗길 위에서 핸들을 꽉 쥐고 있는 나와, 서툰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괜찮아요. 조금 천천히 가도 돼요. 우리는 지금, 아주 잘 가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