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닥’ 한 방이면 해결될 걱정을 끌어안고
TV에서는 몇 시간째 붉은 자막과 함께 특별 재난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문은 거센 비바람에 덜컹거렸고, 빗줄기는 마치 영업 끝난 가게 문을 억지로 열어달라는 취객처럼 유리창을 요란하게 두드려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태풍이 불어도 내일의 출근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바깥의 소란을 애써 외면하며 잠을 청했다. 덜컹대던 창문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질 즈음, 귓가에서 신경을 긁는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웨엥∼’
전기면도기를 켠 듯한 불길한 진동음. 그날 밤, 나는 내 생애 가장 교활한 모기 한 마리와 맞닥뜨렸다. 녀석은 내 귓바퀴 근처를 비행하다 사라지고, 방심하면 또다시 나타나기를 거듭했다. 단순한 미물(微物)이 아니었다. 고도의 특수 훈련을 받은 요원이라 해도 될 만큼 민첩했다.
하지만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어릴 적 냇가에서 손전등 하나로 물고기를 잡던 기억을 떠올렸다. 돌 밑에 잠든 물고기에게 갑자기 빛을 비추면 녀석들은 깜짝 놀라 얼어붙곤 했다. 그때 손으로 낚아채면 백발백중이었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바로 일명 ‘갑불작전(갑자기 불 켜기)’이다. 모기의 허를 찌르듯 전등 스위치를 ‘탁’ 켜면, 녀석은 당황하여 벽이든 천장이든 어딘가에 붙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는 “날 잡아가시오” 하는 듯 꼼짝 않고 내 처분을 기다린다. 그다음은 손바닥으로 “짝!”, 끝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달랐다. 불을 켰는데 없다. 커튼 주름 사이를 뒤지고, 침대 밑까지 샅샅이 훑었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투명 망토라도 두른 걸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 사이, 내 신경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모기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병기, 전기모기채 ‘따닥이’의 출동이다. 올여름 한 번도 쓰지 않아 거실 구석 무기고(?)에 고이 모셔두었던 따닥이를 들고 비장하게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침대 위, ‘받들어총’ 자세로 누웠다.
방 안에는 팽팽한 전운이 감돌았다. 버튼을 누를 엄지에 힘을 준 채 귀를 곤두세웠다. 녀석이 다시 날아와 내 귓가를 간질이며 비웃을 그 순간을 기다리며.
하지만 이상하다. 그토록 요란하던 녀석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내가 무기를 가지러 간 사이 도망친 걸까? 아니면 내 살기를 감지하고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중일까? 별의별 망상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따닥이를 가슴에 품은 채, 나는 그만 깜빡 잠들고 말았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눈을 떴을 땐, 태풍은 이미 앞산을 훑고 지나간 뒤였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혹시 녀석이 벽 속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 위에 선명한 붉은 반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따끔함과 가려움을 동반한 패배의 낙인. 완패였다. 녀석은 내가 졸고 있는 틈을 타, 기어코 임무를 완수하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그 후 며칠 동안 ‘따닥이’를 머리맡에 세워두고 녀석을 기다렸지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승부가 난 상대에게는 다시 시비를 걸지 않는다는, 강호의 도리를 아는 녀석이었던 듯하다.
며칠 뒤, 나는 그 밤을 곰곰이 곱씹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을 진짜 지치게 만든 건 태풍 같은 큰 재난이 아니라, 모기 같은 자잘한 일들이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큰딸이 예정일보다 두 달이나 먼저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며 아내를 입원시켰을 때, 그리고 내가 기흉으로 실려 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야 했던 순간들…. 그런 거대한 파도 같은 일들은 두렵고 막막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를 비장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큰일 앞에서는 어떻게든 대응하고, 이 악물고 견뎌낸다.
정작 나를 무너뜨린 건, 모기 같은 것들이었다. 무심코 던진 타인의 말 한마디에 며칠을 앓고, 사소한 실수 하나에 하루 기분을 망치고, 예상치 못한 따가운 눈총에 마음이 뒤틀렸다. 태풍엔 어떻게든 맞서 싸웠지만, 정작 나를 맥 빠지게 한 건 내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그 자잘한 모기들이었다.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그러나 바로 그런 것들이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태풍엔 재난방송이라도 있지만, 모기엔 경보 시스템조차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은밀히 잠입한다. 매일의 출근길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틈새에도, 스스로에 대한 실망 속에도 소리 없이 파고들어 결정적인 순간에 꼭 마음 어딘가를 물어뜯고 달아난다.
마음의 모기를 이기는 방법이 있을까. 글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그 자잘한 녀석들에게 몇 번쯤 물리더라도, 긁적이며 웃어넘길 수밖에.
인생은, 종종 ‘따닥!’ 한 방이면 끝날 일을 두고, 너무 많은 밤을 뒤척이며 허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