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깊을수록 더 환하게 웃었다

-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

by 노란 잠수함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는 편은 아니다.

무심코 휴대폰 갤러리를 넘기다가, 마음이 턱 붙들렸다.


몇 해 전 찍은 가족사진이다.

설악산 흔들바위 앞, 큰딸의 결혼식, 그리고 촛불 켜진 생일 케이크 앞에서. 사진 속 우리는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 있다. 구김살 하나 없는 표정, 다정한 어깨동무. 프레임 속의 삶은 언제나 평온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문득,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정말 우리 가족의 삶이 이랬던가?’

나는 기억한다. 저토록 환하게 웃고 있던 바로 그해, 현실의 우리는 지옥을 건너고 있었다.

나는 급성폐렴으로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상포진까지 재발해 밤마다 비명을 질렀다. 어디 그뿐인가. 막내딸은 대학 입시에 실패해 방문을 걸어 잠갔고, 이모부와 처남댁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은 친구 아버지의 관을 운구하고 돌아와 허탈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삶은 사진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울퉁불퉁한 자갈길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진첩 속에는 그 '진짜 시간'들이 통째로 도려내져 있다. 고통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고, 오직 웃는 얼굴만 박제된 세상. 그래서일까.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기억 속 고통은 여전히 살에 박힌 듯 선명한데, 이미지 속 나는 세상 근심 없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도대체 무엇이 진짜란 말인가.


이따금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을까?

정말 행복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웃고 싶어서였을까.

생각컨데 행복한 순간이 차고 넘쳤다면, 굳이 강박적으로 셔터를 누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유독 행복할 때, 아니 행복하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삶은 대부분 지루한 반복이거나, 버겁고 고단한 일들로 채워진다. 그 잿빛 일상 속에서 반짝 빛나는 순간이 너무도 드물고 귀하기에, 우리는 그 찰나를 붙들려 안간힘을 쓰며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은 기억을 담는 기록장인 동시에, 간절한 바람을 연출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행복하다, 행복해야 한다."


그 사실을 믿고 싶어서, 그 믿음을 미래의 나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우리는 때로 눈물 고인 눈으로도 기어이 미소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진은 결국 허상일까?

아니다. 사진은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 어떤 순간을 잃고 싶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증거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몸부림,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던 체온.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우리가 고통을 견디는 방식이자, 삶을 다독이는 의식이었다.


나는 지금도 비가 새는 어머니 댁의 빌라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지나간 병마의 흔적은 여전히 몸 여기저기에 남아 쑤시고, 삶의 무게는 좀체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진 속 가족을, 그리고 그 속의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걱정 마. 이것도 결국 지나간다.

너는 그때도 견뎠고, 지금도 잘 이겨내고 있잖아.”


삶은 여전히 어렵고, 하루하루는 소리 없는 전투 같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팠던 날 찍은 사진 한 장이, 오늘을 버틸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비록 연출된 웃음이었다 해도, 웃으려 애썼던 그 마음만큼은 진짜였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웃는 얼굴로 셔터를 누른다.

언젠가 또다시 힘들지 모를 미래의 나를 위해,

그리고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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