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호두 두 알'의 위로
냉장고 문을 열면, 투명한 상자 속에 달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단단한 껍데기 속에 담긴 작은 우주. 달걀은 그저 평범한 식재료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겹의 보호막으로 무장한 정교한 건축물이다. 겉을 감싼 껍데기(난각), 그 안의 얇은 막(난각막), 흰자(난백), 그리고 노른자(난황)를 감싸는 난황막까지. 저마다 다른 두께와 성질을 가진 이들은 오직 한 방향을 향해 일한다. 바로 ‘안쪽’을 지키는 일이다. 무심코 지나치지만, 달걀 하나에도 생명을 보존하려는 치열한 안간힘이 촘촘히 숨어 있다.
난각막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세균을 막아내고, 흰자는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게 하며, 난황막은 가장 연약한 노란 심장을 꼭 껴안는다. 껍데기에 실금이 가더라도 안쪽의 또 다른 막이 터지지 않도록 지탱한다. 보호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비로소 그 존재를 증명하는 법이다.
손바닥 위에서 달걀을 굴려 본다. 톡 치면 깨질 듯 연약해 보이지만, 손끝은 안다. 사실은 여러 겹의 배려가 그 속을 단단히 받치고 있음을. 물론 그 보호막이 영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보호란 ‘임시’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임시’의 순간만큼은, 안쪽의 생명은 충분히 안전하다.
달걀을 바라보다 문득 우리의 삶이 겹쳐진다.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보호막들이 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 무심하게 건네진 쪽지, 옷깃을 여미게 해주는 누군가의 손길 같은 것들 말이다.
몇 해 전, 새로 옮긴 학교에 적응하느라 고전하던 때였다. 잦은 병치레 끝에 결국 면역력이 바닥나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입원을 권했지만, 부장과 담임을 겸하고 있던 터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몸은 불에 덴 듯 타들어 가는데, 맡은 역할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수업을 겨우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내 책상 위에 크고 작은 종이 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큰 상자에는 어성초 진액이, 작은 상자에는 호두 두 알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짧은 메모 한 장.
“다 지나가네. 힘내시게.”
평소 고민도 고통도 혼자 삭이는 편이라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는데, 파리한 안색까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범인은 옆 반 담임 선생님,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선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선배의 부인께서 큰 병으로 투병 중이라 본인도 경황이 없으셨을 터였다. 그런데도 후배의 병색을 놓치지 않고 챙기신 것이다. 메모를 읽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더니 기어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의 나는 껍데기에 금이 간 위태로운 달걀이었다. 겉모양만 간신히 유지한 채, 안쪽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내 삶의 균열이 더는 깊어지지 않게 붙잡아 준 것, 그 얇으면서도 결정적인 ‘막’은 선배의 투박한 손길이었다. “혈액순환에 좋으니 주머니에 넣고 굴려.”라던 호두 두 알은, 지금도 내 가방 속에서 작은 부적처럼 굴러다닌다. 손끝에 그 단단함이 닿을 때마다 깨닫는다. 보호는 거창할 필요가 없음을.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틈만 나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럴수록 우리에겐 달걀처럼 여러 겹의 막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 속 호두 두 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보호막이 된다. 그것들이 위태로운 삶을 씩씩하게 건너게 한다.
삶은 부서지고 흔들리며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 금이 갈 때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막이 생겨 나를 감싸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한 보호막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균열을 메워주며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