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이 은밀한 기쁨에 대하여

- 공유하지 않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들

by 노란 잠수함

오랜만에 지인들과의 모임이 잡혔다. 장소를 추천해 달라는 총무의 연락에 나는 선뜻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마땅한 곳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떠오른 곳이 너무나 명확했기에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골목 안쪽의 작은 삼계탕집.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듯 가게는 한산했지만, 음식 맛은 놀랄 만큼 깊었다. 큼직한 백합 조개로 우려낸 맑고 시원한 국물,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 하나하나까지. 흔한 프랜차이즈 삼계탕집과는 결이 달랐다.


그러나 그곳의 진짜 매력은 ‘맛’이 아니라 ‘공기’였다. 손님이 없어 고요한 공간에서 국물의 깊이를 찬찬히 음미하며, 온전히 나만의 미식(美食)을 누리는 시간. 주인장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 식당에 손님이 많아지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다. 마치 어릴 적 다락방 항아리에 곶감을 숨겨 두고 몰래 꺼내 먹는 기분이랄까. 남들이 모르는 비경(祕境)을 나만 독점하고 있다는 묘한 우월감과 뿌듯함이 숟가락을 들 때마다 차올랐다.


그래서일까. 지인들에게 그곳을 알려줄까 말까 고민이 깊어졌다. 단순히 맛집을 아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은밀한 기쁨이 공유되는 순간, 더 이상 온전히 내 것이 아니게 될까 봐 주저한 것이다.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그 오롯한 고유함이 희석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임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흔들렸다. 괜히 뜸 들이다가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나는 채팅방에 그 집의 위치를 찍어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왜 그렇게 머뭇거렸을까.’ 곰곰이 마음을 들여다보니, 단지 식당 하나를 숨기려던 게 아니었다. 나는 그 ‘기쁨’을 내 안주머니 속에 조금 더 오래 간직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나만의 은밀한 기쁨이 있다. 쉽게 내어주기 싫고, 차곡차곡 쌓아 두며 스스로를 지탱하는 그 무엇.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환해지는 기억,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빛나는 순간들. 그것은 남들에게 드러낼 때보다 혼자 감추어 둘 때, 삶의 고단한 순간마다 나를 붙드는 힘이 되어준다.


가령, 연애 시절 아내가 정성껏 접어 선물해 준 천 마리 학이 담긴 유리병을 가만히 꺼내어 볼 때. 교직 초임 시절, 제자들이 삐뚤빼뚤 적어 준 응원의 쪽지들을 다시 읽을 때. 혹은 늘 찾는 산책로에서 내가 ‘장자의 의자’라 이름 붙인 벤치에 홀로 앉아, 보온병에 담아 간 오미자차를 마시는 순간 같은 것들. 그럴 때 나는 굳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나만의 충만한 기쁨을 얻는다. 이것은 공유가 아니라 독점함으로써 완성되는 행복이다.


물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오래 품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와 그 빛을 함께 바라보고 싶어지는 순간도 온다. 그러나 그 순간, 기쁨은 필연적으로 모양을 달리한다. 나눌수록 넓어지기는 하겠지만, 내 안에서만 온전히 빛나던 그 뾰족하고 선명한 고유함은 조금씩 무뎌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갈림길 앞에 선다. 더 오래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기꺼이 나눌 것인가.


약속한 날은 공교롭게도 말복(末伏)이었다. 나만의 비밀 요새였던 식당은 이미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음과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 집, 국물이 진짜야. 내가 왜 소개했는지 먹어보면 알아.”

한참을 기다려서야 음식이 나왔다. 일행은 국물을 한 술 뜨자마자 감탄을 쏟아내며 숟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와, 진짜 시원하다! 야, 이런 데를 너만 알고 있었냐?”


그들은 금세 그릇을 비워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숟가락은 자꾸만 허공에서 멈칫거렸다. 같은 재료, 같은 국물인데도 어쩐지 맛이 예전만 같지 않았다. 고요 속에 흐르던 그 깊은 맛은 온데간데없고, 소란스러운 말소리에 섞여 국물 맛마저 밍밍하게 느껴졌다. 혼자 간직하던 은밀한 기쁨이 내 안에서 빠져나가 바깥으로 흩어져버린 탓이리라.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들 하지만, 어떤 기쁨은 마음 깊은 곳에 고이 감춰 둬야만 비로소 맛이 난다. 그 은밀한 기쁨이야말로, 팍팍한 삶을 견디게 하는 가장 맛있는 비상식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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