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멸이 아니라 완성으로 향하는 삶의 뒷모습
나이 든다는 건 단순히 육체가 낡아가는 일만이 아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삶을 대하는 시선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속도와 성과가 지배하던 자리에 ‘방향’과 ‘균형’이 들어선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눈이 생긴다. 삶은 무언가를 채우는 시간이라기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덜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차츰 여물어간다. 무엇보다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죽음’이 이제는 피부에 닿는 감각으로 또렷해지면서, 지금 이 순간의 생(生)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내면의 변화는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고스란히 스며든다. 젊은 날엔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절정의 순간에 마음을 뺏겼다면, 이제는 꽃이 지는 모습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문다. 한 송이 꽃이 땅으로 내려앉은 그 쓸쓸한 자취가 마치 우리 인생의 최후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꽃이 스러지는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며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 묵상하곤 한다.
꽃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다. 그리고 그 지는 모양새는, 꽃이 치열하게 살아온 길과 꼭 닮아 있다.
민들레는 사람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틈새에서 피어나, 스스로 홀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자신을 온전히 해체하여 내려놓음으로써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떠나는, 가장 가볍지만 가장 거룩한 끝맺음이다.
수국은 장마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다 서서히 색을 바꾼다. 빛과 물을 받아 시시각각 화려함을 뽐내던 꽃은, 때가 되면 빈티지한 색감으로 마르며 천천히 사그라든다. 자연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늙어가는 생의 끝은, 이토록 부드럽고 고요하다.
나팔꽃은 하루를 불꽃처럼 산다. 새벽을 열며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면 스스로 잎을 말아 올리며 자신을 지운다. 단 한나절 만에 생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고 미련 없이 닫히는 모습은,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뜨겁게 살아낸 사람의 뒷모습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동백은 눈 속에서도 붉은 절개를 지키다 간다. 꽃잎이 지저분하게 흩날리는 것을 거부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목이 꺾이듯 ‘툭’ 하고 통째로 떨어진다. 그 비장한 낙화에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단단한 고집과 결기가 배어 있다. 자기 빛깔대로 치열하게 살아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의연한 투신(投身)이다.
꽃들은 이렇듯,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에 걸맞은 자신만의 마지막을 슬기롭게 준비한다.
얼마 전 산길을 걷다가, 칡꽃이 지는 풍경과 마주했다.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 기어이 피워냈던 보랏빛 꽃들이 풀숲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뒹구느라 빛깔은 바랬지만, 신기하게도 그 향기는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짙고 깊었다. 칡은 억세고 끈질기다. 돌 틈을 비집고 자라며 닥치는 대로 감고 올라가 잎으로 땅을 덮고 줄기로 하늘을 찌른다. 그렇게 온몸으로 생을 밀고 나가며 피워낸 꽃이, 땅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가장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인생도 저 칡꽃처럼, 자신의 때를 알고 선선히 물러날 때 더 깊은 향기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아름다움은 최고의 순간을 억지로 붙들고 늘어지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을 단정하게 매듭짓고 물러나는 뒷모습에 있을지 모른다.
칡꽃이 지고 난 자리에 나의 마음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언젠가 내게도, 저 꽃들처럼 속절없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두려워하기보다, 나의 삶이 뿜어낸 향기와 빛깔에 어울리는 이별을 준비하며,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단정하게, 꽃이 지듯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