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마음으로 글을 짓다

-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문장을 당신에게 건네며

by 노란 잠수함

아무래도 전기압력밥솥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갓 지은 밥에도 찰기가 없고, 고무 패킹을 갈아 끼워 봐도 영 신통치 않다. 헐거워진 뚜껑 틈으로 열기와 증기가 새어 나오는 걸 보니, 십 년 세월을 버텨온 녀석도 이제 제 할 일을 다한 모양이다.


낡은 밥솥을 정리하며 생각한다.

새 밥솥을 들인다고 해서 저절로 맛있는 밥이 지어지는 건 아닐 테다. 윤기가 흐르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밥맛은, 밥솥의 성능보다 짓는 이의 '감각'과 '정성'에서 완성되는 법이니까.


문득, 밥 짓는 일이 글 짓는 일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좋은 쌀을 고르는 일은 글의 '소재'를 찾는 것과 같다.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햅쌀이 수분을 머금어 구수한 단맛을 내듯, 글도 재료가 신선해야 한다. 남의 생각을 빌린 묵은 문장이나 낡은 관념으로 지은 글은 푸석해서 감동이 없다. 내 안에서 막 길어 올린 생각, 아직 말로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 그것들이야말로 햅쌀처럼 생기 있는 글의 재료다.


둘째, 쌀을 씻는 일은 '퇴고'의 시작과 진배없다.


쌀을 씻을 때 첫물은 빠르게 버려야 한다. 그 속엔 쌀겨와 묵은 냄새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 쏟아낸 문장은 탁하고 거칠다. 의욕과 흥분이 엉켜 말보다 마음이 앞선 탓이다. 그 문장을 몇 번이고 헹구듯 고쳐 쓰다 보면 불순물이 걷히고 비로소 문장이 맑아진다.


셋째, 쌀을 불리는 시간은 '생각이 여무는 시간'이다.


충분히 물을 머금은 쌀만이 속까지 고르게 익는다. 글도 생각이 충분히 불지 않은 채 서둘러 쓰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 있게 마련이다. 서두르지 않고 침전시키는 시간, 말보다 생각이 먼저 여물어야 문장이 깊은 맛을 낸다.


넷째, 불을 올려 밥을 짓는 것은 '몰입'의 시간이다.


밥이 익어가는 동안 뚜껑을 열면 안 되듯, 글을 짓는 시간에도 세상으로 향한 문은 잠시 닫아야 한다. 오직 한 문장, 한 단어에 마음을 모으는 시간. 생각의 불이 일정한 온도로 타올라야 비로소 문장이 익는다.


다섯째, 뜸 들이기는 글의 '숙성'과 닮았다.


불을 끈 뒤에도 밥은 여전히 익어간다. 남은 열과 수분이 밥알 깊숙이 스며들며 찰기를 만든다. 글도 다르지 않다. 막 써낸 초고는 아직 설익은 밥과 같다. 하룻밤쯤 묵혀두었다가 다시 읽으면 그제야 덜 익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뜸이 부족하면 설익고, 너무 오래 식히면 온기를 잃는다. 글맛은 그 미묘한 온도의 균형에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밥을 푸는 일은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일과 같다.


혼자 먹는 밥보다 누군가와 나눌 때 밥맛이 살아나듯, 글 또한 내 마음의 밥 한 그릇을 누군가의 허기진 마음 앞에 내어놓는 일이다.

글짓기는 본디,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퍼 담을 때의 그 따뜻함처럼, 내가 지은 글 한 편에도 그 온기가 고스란히 배어있길 바란다.


오늘도 나는 밥을 짓고, 글을 짓는다.

밥이 완성되면 집 안 가득 구수한 향이 퍼지듯, 내 글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윽한 여운으로 남길 바라며.


밥이든 글이든, 결국은 마음을 짓는 일이다.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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