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달력의 동그라미 속에 있다

- 기다림이라는 씨앗을 심는 일에 대하여

by 노란 잠수함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찾아 헤맨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알랭의 행복론을 뒤적이고, 세네카의 지혜에서 길을 찾으려 하며, 염세적인 쇼펜하우어의 통찰까지 빌려와 행복의 비밀을 풀어보려 애쓴다. 마치 어딘가 숨겨진 보물지도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어렵고 복잡한 철학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의 틈, 바로 '기다림' 속에 시나브로 피어나고 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자라게 하는 신비로운 밭이다. 설렘과 기대, 때로는 기분 좋은 조바심 같은 감정들은 모두 기다림이라는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감정을 배워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이 기다림의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이미 자라나는 감정이다. 사랑하는 이와 만날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는 순간, 마음속엔 이미 설렘의 싹이 돋는다. 여행을 계획하며 휴대폰 캘린더에 일정을 입력하는 그 순간부터, 행복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행복으로 가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길은, 날마다 이 '기다림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 씨앗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자이언트 세쿼이아처럼 거대한 나무를 꿈꿀 필요는 없다. 진달래나 철쭉처럼 작고 다정한 꽃나무면 충분하다.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는 것,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놓고 기다리는 것, 혹은 달력을 넘겨 맛집에 가기로 한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두는 것. 이 사소한 행위들이야말로 인생이라는 밭에 뿌리는 가장 확실한 행복의 씨앗들이다.


며칠 전, 나는 닷새 동안 정성껏 키워온 행복을 거두었다.

친한 후배와 가기로 한 쌈밥집을 예약해 두고, 꼬박 닷새를 기다렸다. 식당 앞에서 번호표를 들고 한참을 서성여야 했지만, 그 지루한 시간마저 즐거웠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맛있는 한 끼'라는 기다림의 씨앗을 뿌리고, 각자의 행복을 수확하러 온 농부들 같아 보였다.


내일은 또 다른 행복을 수확하러 간다.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 셋과 갯바위로 떠나기로 했다. 낚싯대 끝이 요란하게 흔들리길 바라는 마음보다 나를 더 설레게 한 건, 친구들과 떠날 채비를 하며 보낸 지난 일주일이었다. 행복은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순간보다, 함께 떠나려는 마음속에 먼저 찾아왔다.


그리고 내년 1월, 나는 장장 반년 동안 키운 커다란 행복을 맞이할 예정이다.

오래된 친구 부부들과 베트남 냐짱으로 생애 첫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매달 여행경비를 조금씩 모으며, 마음속 설렘도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다. 이것은 돈보다 더 값진 이자가 붙는, '기다림의 통장'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기다릴 것이 있는 삶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오늘의 작은 약속이 내일의 설렘이 되고, 그 설렘이 다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기다림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가장 적극적인 표징이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의 밭에 작은 기다림 하나를 심어 두자.

그 씨앗이 싹을 틔워 당신을 기다리는 내내, 행복이라는 향기를 뿜어낼 테니.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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