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쓸쓸해지기로 했다

-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법에 대하여

by 노란 잠수함

햇살은 부드러워지고 바람 끝은 차가워졌다.

계절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감정의 온도 또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여름 내내 바깥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던 마음이, 가을이 오면 서서히 안으로 방향을 튼다.

세상의 소음이 줄어들고 들떠 있던 기운이 잦아들면,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가 또렷해지는 시간. 가을은 그렇게 온다.


생(生)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박두진 시인의 시, 「도봉」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가을 산의 어스름 속에서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묵직한 '존재의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해마다 이맘때면 이성보다 마음이 먼저 계절을 알아챈다. 창밖의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아침 공기에 서늘한 물기가 배어들면,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쓸쓸해진다.


가을은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끝'을 이야기한다.

풍경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역설적으로 그 안에 서린 ‘사라짐’의 예감이 짙게 깔린다. 꽃이 지고, 잎이 떨어지고, 찬란했던 햇살마저 짧아질 때 우리는 직감한다. 모든 것이 결국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하지만 이 '가을의 쓸쓸함'은 단순한 외로움과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순간이자,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통과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감정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시간을 의식하는 존재’라 했다.

가을이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레 나의 '끝'을 떠올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끝을 인식할 때, 우리는 ‘지금’이라는 시간에 가장 가까워진다. 삶의 덧없음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지금 내 앞에 놓인 생이 얼마나 찬란한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쓸쓸함은 존재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귀한 시간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 세상이 잠시 침묵한 틈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이 아닌 ‘나’와 마주한다.

쓸쓸함은 내가 짊어진 존재의 무게를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다.

그 감정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느려지고, 사소한 것들이 낯설 만큼 선명해진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 소리, 창가에 머무는 오후의 햇살, 그리고 내 숨결의 리듬까지.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은 단단하게 응축된다.

쓸쓸함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진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 감정을 피하려 애쓴다.

허전함을 달래려 약속을 잡고, 음악을 크게 틀고, 의미 없는 일들로 마음의 빈틈을 메우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위로는 회피 속에 있지 않다.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봐 주는 일, 곁에 머물러 주는 일이야말로 쓸쓸함을 대하는 가장 온전한 태도다.


그러니 가을바람이 스며드는 날이면, 억지로 마음을 달래려 하지 말고 이렇게 가만히 속삭여 볼 일이다.


“가을엔, 쓸쓸해지자.”


이 깊은 쓸쓸함을 온전히 통과한 사람만이, 다가올 긴 겨울을 단단히 견뎌낼 수 있을 테니까.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감성에세이 #철학에세이 #쓸쓸한 감정 #가을에세이 #가을생각하기 #시간의 흐름


작가의 이전글망한다던 카페가 문을 여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