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달려 꽃을 보지 못했다

- 멈추지 못해 놓쳐온 삶의 꽃을 다시 바라보는 일

by 노란 잠수함

내가 사모하는 정공채 시인의 시, ‘간이역’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시인은 묻는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그 작은 간이역마다 꽃이 피어 있지 않았냐고. 지나고 나서야 "아, 거기에 꽃이 있었던가" 하고 뒤늦게 탄식해 본 적 없냐고.


인생길에서 꽃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모란이나 작약처럼 크고 화려한 꽃을 꿈꾸며 살아간다. 남들의 시선을 끄는 자리, 기억될 만한 성취, 스스로 뿌듯해할 장면들을 갈망한다.


하지만 삶을 돌아보면 그런 날은 놀랄 만큼 적다.

대부분은 소란스럽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조금은 너절하고 시시콜콜한 순간들의 연속일 뿐이다. 시인의 말처럼, 삶의 진짜 꽃들은 그 하찮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날들 속에 숨어 피어난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간이역' 취급한다는 데 있다.

간이역은 기차가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역이다. 플랫폼이 있지만 머물지 않고, 열차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은 채 쌩하니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에게 간이역은 그저 창밖으로 흘러가는 배경일뿐이다. 그러니 그곳에 제아무리 고운 꽃이 피었다 한들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우리는 어쩌면 삶 또한 간이역 지나치듯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속도는 날마다 빨라지고, 그 거센 흐름에 떠밀려 멈추지 못한 채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하루를 찬찬히 들여다볼 틈도 없이 다음 날이 도착하고, 또 그다음 날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사이 눈길 한 번 주지 못한 순간들,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사람들, 기록하지 못한 마음의 떨림들이 열차 창밖 풍경처럼 흐릿하게 뭉개져 버린다.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는 ‘멈추지 않는 것’에 길들여진다.

멈춤은 뒤처짐이라 여기고, 잠시 쉬어가는 일마저도 죄스러워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삶은 결국 ‘보지 못하는 삶’이 된다. 속도에 취한 눈은 넓게 보지 못하고, 바쁜 걸음은 삶의 깊이를 놓친다.


우리가 지나간 풍경의 아름다움을 뒤늦게 떠올리며 후회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때 우리의 시선이 너무 먼 곳을 향해 있었거나, 혹은 너무 빨리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종착역에 닿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러다 길가에서 반갑게 손 흔들던 소중한 인연의 얼굴을 놓치고, 오늘 하루가 어떻게 피고 졌는지조차 모른 채 저녁을 맞이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삶의 기쁨은 대개 뜻밖의 순간에 피어나고, 의미는 잠시 머물렀던 자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옷깃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 낯선 이가 건네는 수줍은 미소, 하루의 끝에서 찾아오는 작은 여백...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잠시만 멈추어 준다면 꽃이 될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서두를까.

어쩌면 ‘멈추어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잠시 바라보는 법을 잊은 채, 어느새 속도만을 유일한 삶의 기준으로 여겨 온 것은 아닐까.


오늘도 인생의 간이역 어딘가에서는 분명 꽃이 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주 조금만 속도를 늦춘다면, 그 꽃이 눈앞에서 피어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또렷이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지금 당신의 기차 속도를 조금만 늦추기를.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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