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낚아 올린 것

-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은 품격을 얻는다

by 노란 잠수함

낚시 가방을 올리다 허리를 삐끗했다.

자고 나면 낫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통증은 깊어졌고, 결국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동네 사우나를 찾았다.


사실 나는 대중목욕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이들과 발가벗고 섞이는 어색함도 그렇거니와, 그곳 특유의 대화들이 불편해서다. 중년 사내들이 모이면 으레 나오는 건강 비법들. 아마씨가 관절에 좋다느니, 플랭크가 최고라느니 하는 열정적인 조언들을 듣고 있자면, ‘몇 년 더 살자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묘한 반발심마저 들곤 했다.


일요일 오후의 사우나는 북적였다.

다행히 내가 점 찍은 열탕엔 두 사람뿐이었다. 네댓 명만 들어가도 숨 막히는 좁은 탕.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마자, 옆 사람들의 대화가 욕탕의 물결처럼 내 귀로 찰랑거리며 밀려왔다.


나는 애써 귀를 닫았다.

그들의 소음을 지우기 위해, 나는 기억 속의 바다를 꺼냈다. 엊그제 다녀온 갯바위 낚시터. 눈을 감자 뜨거운 수증기는 사라지고, 남해의 푸른 물결이 눈앞에 출렁이기 시작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파도, 갯바위를 스치는 짠 내음...


어느새 내 손엔 낚싯대가 들려 있다.

초릿대가 순식간에 바다 쪽으로 빨려들 듯 휜다. 손목과 팔뚝의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묵직하다. 릴을 감을 때마다 전해지는 이 생생한 저항감. 이제 곧, 녀석이 수면 위로 은빛 비늘을 드러낼 순간이다.


“담낭암 말기라네.”


팽팽하던 낚싯줄이 ‘툭’ 하고 끊어졌다. 눈앞에서 팔딱거리던 큼지막한 고기는 순식간에 깊은 심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해의 푸른 바다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숨 막히는 열탕의 공기가 나를 덮쳤다.


“큰 병원에 가보라 하지 그랬어.”


다른 사내의 건조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는 미세한 입질을 감지한 낚시꾼처럼 숨을 죽이고 귀를 세웠다. 두 사람이 아는 누군가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가라 했지. 근데 안 가겠대. 돈도 없고, 그냥 그러기 싫대.”


말을 전한 사내는 혀를 찼다. 듣고 있던 사내는 요즘 의술이 좋아졌다며, 자기가 아는 누가 암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 말을 꺼낸 사내가 “그래, 맞아.” 하며 탕이 울리도록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는 묘하게 섬뜩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저토록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다니. 그들은 마치 죽음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인 양, 타인의 비극을 안주 삼아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이 자리를 뜨자, 나는 홀로 탕에 남았다.

탕속으로 몸을 턱 밑까지 깊숙이 밀어 넣고 생각에 잠겼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치료를 거부한 그 환자의 마음이었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말기’라는 단어 앞에서 치료는 희망보다 고통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가족에게 남겨질 짐을 덜기 위한 그의 쓸쓸한 결단에, 생면부지의 그에게 마음이 깊이 아려왔다.


반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두 사내의 태도였다.

그들은 몰랐을까. 우리 또한 언제든 운명의 낚싯바늘에 걸려 끌려 나갈 수밖에 없는 물고기 신세라는 것을.


우리는 늘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나만은 예외일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로마의 장군들은 승리의 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 노예를 시켜 이렇게 속삭이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뜨거운 탕 속에서 나는 삶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그 시간을 알기에, 지금 겪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깊이 공감하는 것. 그것이 유한한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품격 아닐까.


허리의 통증보다 더 묵직한 깨달음 하나를 낚아 올린 채, 나는 사우나를 나섰다.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NAVER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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