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0.5초의 습관

- 탁월함은 반복된 일상의 흔적이다

by 노란 잠수함
"우리가 반복해서 하는 행동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이란,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땀이 배었다. 마트에 가는 길, 문득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왔다는 생각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급히 집으로 차를 돌렸다. 마음은 이미 주방 가스레인지 앞에 가 있었다. 초초한 시선은 앞차를 쫓았다. 바로 그때, 교차로의 신호가 황색으로 바뀌었다.

평소 같았다면 브레이크 페달 위에 발을 올렸을 것이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자’는 여유가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1분 1초가 아쉬운 조급함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도 모르게 액셀을 깊게 밟았다. 엔진소리가 거칠어지며, 차는 황색 신호의 끝자락을 물고 교차로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도 없었다. 내가 주행하던 2차로는 무슨 영문인지 꽉 막혀 있었다. 반면, 바로 옆 1차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비워둔 길처럼 유혹적이었다. 무사고 운전 30년의 감각이 본능적으로 계산을 마쳤다.


‘지금이다.’

운전석 사이드미러를 재빨리 훑었다. 비어 있었다. 내 차의 속도와 거리감을 감안할 때, 진입은 완벽해 보였다. 핸들을 왼쪽으로 꺾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 몸에 새겨진 아주 오래된 습관 하나가 불쑥 제동을 걸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왼쪽 어깨너머로 돌렸다. 이른바 '숄더 체크(Shoulder Check)'였다.


30년 전, 운전면허 학원에서 처음 핸들을 잡던 날, 강사가 유독 강조했던 바로 그 수칙.


"거울을 믿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반드시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눈으로 확인하세요.“

그 가르침은 지난 30년 동안 내 몸에 배어 이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입 안에 혀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그 0.5초의 찰나, 망막에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헛것을 본 것인가 싶었지만,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꺾으려던 핸들을 본능적으로 다시 꽉 움켜쥐며 2차로를 유지했다.

"훵-!“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정체불명의 물체가 1차로를 쏜살같이 베고 지나갔다. 배달 오토바이였다. 도심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내 차와 불과 깻잎 한 장 차이로 스쳐 갔다. 그가 일으킨 바람에 차체가 휘청거리는 듯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지경이었다. 만약 내가 그 순간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핸들을 꺾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앞차의 뒤를 따라가며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혼미했던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자, 벌어질 수도 있었던 끔찍한 상황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스팔트 위에 나뒹굴었을 오토바이 운전자, 흉물스럽게 구겨졌을 나의 자동차, 그리고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을 나와 그 청년의 일상들. 그 끔찍한 파국을 막아낸 것은 나의 뛰어난 운전 실력도, 순간적인 판단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내 몸에 입력되어, 위기의 순간에 생각보다 먼저 반응한 '사소한 습관'이었다. 사이드미러가 보여주지 않는 진실을 확인하려 했던 고개 돌림 한 번이 두 사람의 인생을 구한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스레인지를 확인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착각이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집은 평온했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을 스치고 나니, 무심코 흘려보냈던 내 일상의 행동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나의 또 어떤 습관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매일 아침 맞이하는 식탁 풍경이었다. 퇴직 후 일 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아내와의 아침 식사. 나는 낫또에 삶은 계란과 잘게 자른 김, 참기름을 넣어 정성껏 비빈다. 그리고 우유와 유산균을 배합해 8시간을 기다려 만든 수제 요거트에 견과류를 얹는다. 일본 여행길 가이드에게 들었던 "낫또는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보약"이라는 말을 믿으며 시작한 이 소박한 루틴은, 이제 우리 부부의 하루를 여는 정겨운 아침 풍경이 되었다. 끈적한 낫또를 휘저으며 생각한다. 이 끈기가 우리 부부의 건강을, 함께 늙어가는 우리의 시간을 더 찰지고 단단하게 뭉쳐주고 있다고.


습관은 관계를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모에게 매일 전화를 거는 일은 이제 알람 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과가 되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그 짧은 시간은, 어머니의 안녕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평안까지 지켜주는 방파제다. 출근하는 아내를 현관까지 배웅하며 나누는 짧은 입맞춤 역시 그렇다. 처음엔 쑥스러웠던 그 행동이 이제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부적과도 같다. 그냥 보내면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 그 빈틈을 메우듯, 그 다정한 의식이 우리 부부 사이의 신뢰와 애정을 녹슬지 않게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순간을 빼놓을 수 없다. 매주 한 편,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지난 7개월간 매주 빠짐없이 빈 모니터 앞에 앉았다. 글재주가 부족해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버거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고단한 습관은 오히려 나를 늘 깨어있게 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흘려보냈을 일상을 붙잡아, 나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생각들을 정제하고, 나 자신과 대화하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은퇴 후 자칫 무기력해질 수 있는 나의 영혼을 살리는 가장 귀한 습관이 아닐 수 없다.


그날 나는 도로 위에서 뼈저리게 확인했다. 내 몸에 밴 좋은 습관 하나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그것은 단순히 효율을 높이고 시간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선다. 좋은 습관은 건강을 지키고, 관계를 살리며, 때로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다시 새해를 맞이한다. 나는 다이어리에 몇 가지 새로운 다짐을 적어 넣었다. '주 1회 도서관 가기', '한 달에 5권 책 읽기', 그리고 '브런치 연재 멈추지 않기'.


이 다짐들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고 내 몸의 일부가 되기를, 그리하여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하는 ‘평생의 습관’으로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위기의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던 그날의 0.5초처럼, 내 삶의 구석구석에 배어든 좋은 습관들이 예고 없이 닥쳐올 인생의 굴곡 앞에서 나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탁월함이란 거창한 성취가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습관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 그리하여 그 습관이 내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도록 핸들을 맡기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탁월함이다.


나는 오늘도 낫또를 비비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고, 묵묵히 빈 화면을 채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인생의 사각지대에서 나를 구해줄, 이 정직한 습관들의 힘을 믿으며.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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